[법률산책]잊을 수 없는 나의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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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산책]잊을 수 없는 나의 사건
  • 법률저널
  • 승인 2003.06.24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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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우 변호사

법무법인 한강


지난 2002년 서울 북부 지원에서 법원 실무 수습을 할 때의 일이었다. 다양한 소송을 접하며 넘치는 혈기를 누를 길이 없던 시보에게 다가온 '국선 변호'란 소중한 경험이었다. '추운 고시생활' 속에서 일부 꿈꾸어왔던 보람된 순간을 향해 나의 발걸음은 구치소로 향했는데 나보다 더 일찍이 더 큰 기대감으로 기다리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공무집행방해죄로 구속된 40대 아저씨였다.

그 분은 너무 깊은 죄책감에 휩싸인 나머지 말조차 제대로 잇지 못하며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남기며 죄를 무조건 달게 받겠다고 하였다. 마음 깊은 곳에서 순수한 반성이 배어 나오는 것을 보고 나는 최선을 다해 진심으로 그를 돕고 싶었다. 우선 합의를 유도할 수 있는 가족의 도움을 받고자 가족의 연락처를 물은 뒤 늦은 밤 의뢰인의 딸을 만나러 기차역으로 향했다. 기차역에서 3시간을 기다리자 20대 초반의 한 여자가 나에게로 다가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하기 어렵다고 하는 카지노에 취직을 해서 지금 연수도중에 나온 것이라며 아버지의 안위를 걱정하기보다는 부끄러워하면서 마지못해 의무감으로 끌려나온 듯해 보이는 의뢰인의 딸은 나를 반기지 않는 듯 보였다. 나는 의뢰인의 딸에게 "아버님은 술에 취해 실수를 저지른 것이고 현재 충분히 반성을 하고 계십니다. 따님의 도움이 있다면 충분히 합의로 풀려 나오실 것 같은데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한번 저를 믿어주십시요" 라고 말했다. 그녀는 나의 말을 듣고 긴 한숨을 내 뱉었다. "20여년의 세월동안 어려운 가정형편에 시달려야 했던 트럭운전사인 아버지, 그리고 큰 빚을 지고 이혼 후 도망가 버린 어머니, 군에 들어간 남동생, 이제야 나도 취직을 통해서 부모님의 어두운 그늘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왜 지워버리고 싶은 아버지의 일에 나를 연루시키냐"는 것이다. 그녀가 말한 미래의 행복엔 마치 아버지가 걸림돌이기라도 한 듯 아버지의 감옥살이는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오히려 상황은 내가 그녀에게 "나와 같이 피해자와 합의하러 가자"고 부탁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고 결국 그녀는 예약한 차시간과 연수도중이란 이유로 충분히 합의로 풀려날 수 있는 아버지를 버려 두고 가버렸다. 참으로 답답하였다. 선량한 눈빛으로 죄를 뉘우치고 있는 그 아저씨를 뒤로 할 수 없어 나라도 남은 피해자들을 모두 만나서라도 합의를 받아 내겠다는 생각에 사비를 털어 가며 피해자들과 합의를 하였다. 다행히 이 아저씨는 집행유예로 석방되었는데 혹시 실형이 선고될까봐 내 마음은 매우 초조하였고 변론요지서도 밤새워서 작성할 정도로 이 사건에 많은 공을 들였다.

얼마 후에 나는 이 아저씨로부터 전화 한 통화를 받았다. "저...너무 감사해서 고 변호사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꼭 한번 뵙고 인사라도…." 이어지는 그의 목소리에서 세상의 따뜻한 온기가 전화기로 전해져 오는 것 같았다. 나는 "아닙니다. 제 바램은 아저씨가 가족들과 함께 행복하게 사시길 바랄 뿐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지금 현재 나는 법무법인 한강에서 변호사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때만큼 한 사건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 적은 없었다. 아마도 그 아저씨의 딱한 사정도 있었겠지만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바램 때문에 더 열심히 변론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가끔은 그 아저씨 생각을 할 때가 있는데 지금 어디에선가 가족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약력>
1990-1993         대기고등학교
1993-1997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
1999                  제41회 사법시험 합격
2001-2003         사법연수원 32기
2003~2003.5      선명법무법인(선명과 로천사의 합병)

2003.5∼현재      법무법인 한강
벤처기업 및 벤처캐피탈 법률자문
일반 민사, 형사소송
회계 및 부동산 개발회사 법률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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