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 교수의 세상의 창
상태바
오시영 교수의 세상의 창
  • 법률저널
  • 승인 2011.03.11 10: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편의주의와 밥그릇싸움!

오시영 숭실대 법대학장/변호사/시인

예수와 부처, 마호메트를 불러 한 자리에 앉힌다. 술 한 잔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차 한 잔 하시겠습니까? 세 사람이 함께 “나는 술!”이라고 외친다. 내가 되묻는다. “아니 젊잖으신 분들이 무슨 대낮부터 술이십니까? 차나 드시면서 덕담이나 나누시죠!” 그러나 세 사람은 막무가내로 “아니 술 달라니까!”라고 외친다. “그렇게 막무가내로 술을 드시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묻는 내게 그들은 대답한다. “열불 나잖아!” 가상으로 그려보는 오늘에 대한 성자들의 반응이 아닐까 싶어 혼자 해보는 헷소리다. 헛소리 아닌 헷소리다.

지금 세상에는 온갖 “편의주의”가 판치고 있다. 편의주의가 합리주의라는 미명 하에 원칙도, 명분도 없는 온갖 이권주의에 매몰되고 있다. 편의주의가 판을 치기 시작하면, 법치주의는 사라지고 만다. 며칠 전 검찰이 신임검사를 로스쿨 성적 우수 졸업생 10% 이내에서 로스쿨 원장의 추천을 받아 임용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이에 대해 법원도 뒤질세라 판사 인턴제를 비슷한 방식에 의해 실시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그러자 3월 초에 입소하게 된 사법고시 합격자들과 기존의 사법연수생들이 이에 대해 입소식참가거부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그 부당함을 항의하였다. 그러자 언론과 방송은 이러한 사법연수생들의 반발에 대해 “밥그릇싸움”이라는 제목을 크게 달아 대대적인 보도를 하기에 이르렀다.

세상의 모든 가치는 명분을 유지할 때 도덕적 힘을 받게 되어 가치로서 존중받게 된다. 따라서 명분을 상실하게 되면 모든 정의와 진실은 힘을 잃는다. 그러기에 사악한 자들은 상대방의 명분을 사소한 이기심 내지는 밥그릇싸움으로 격하시킴으로써 그들의 설 자리를 무너뜨리는 수법을 종종, 아니 자주 사용한다. 그러기에 진보개혁을 주장하는 이들에게는 보수정체에 놓여 있는 자들보다 더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지 모른다. 절대선의 개념으로 보면, 절대선에 훨씬 못 미치는 자들이 자신은 아주 진흙탕 속에서 온 몸이 새까맣게 때칠을 하고서도, 절대선에 훨씬 가까이 와 있는 반대편의 겨 한 줌 묻었을 뿐인 그래서 자신들보다 더 나은 이들에 대하여 맹비난을 가할 때가 자주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들의 더러움에도 불구하고, 보다 덜 더러운 자들이 내세우는 도덕적 가치를 함몰시키고, 이를 통해 덜 더러운 자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를 짓뭉개버리는 것이다. 그리고는 뒤에 숨어 음험하게 낄낄거리며 웃어재끼는 것이다.

그래, 사법연수생들의 위와 같은 항변은 어찌 보면 사법고시 출신과 로스쿨 출신 사이의 검사나 판사에 대한 임용을 둘러싼 밥그릇싸움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원칙은 이렇다. 로스쿨의 당초 취지는 사법고시만으로는 급변하는 세계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을 가진 자들로 사법부나 검찰을 구성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함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대학에서 또는 사회에서 다양한 전공이나 경험을 한 자들로 하여금 로스쿨에 진학할 수 있도록 하여, 그들에게 법학과목을 이수시켜 그들을 사법부나 검찰에 진출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로스쿨 입학생에게는 현재의 사법연수원체제의 심도 있는 교육이 이루어지기 어려운 현실을 고려하여 졸업 후 변호사시험에 합격하고 5년 정도 변호사 실무를 익힌 다음, 그 후에 그들 중 유능한 자를 판사나 검사로 임명하겠다는 것이 당초취지였는데 그러한 취지가 몰각되었다는 점이라 할 수 있다.

즉 사법연수생들이 주장하는 것이 원칙적 정답으로 옳은 것이다. 원칙을 주장하는 자들에 대하여 밥그릇싸움이라는 제목을 붙여 그들의 정당한 주장을 비난하는 우리 방송이나 신문 등 언론은 잘못 되어도 한참 잘못 되었다. 언론에 대한 신뢰를 이미 포기한지 오래 되었지만, 우리 언론의 행태를 보면 매사가 양비론으로 흘러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정보를 국민들에게 올바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가십거리 정도에 불과한 아주 사소한 것들은 몇날 며칠에 걸쳐 선정성 보도를 하는가 하면, 국민들에게 아주 중요한 사회적 이슈는 보도하지 않아 버리거나 축소보도해 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 또한 수없이 경험해 왔다.

검찰청법 제29조는 검사의 임명자격을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사법연수원 과정을 마친 사람이나 변호사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 제한하고 있다. 한편 법원조직법 제42조 제2항 또한 판사의 임명자격을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사법연수원의 소정과정을 마친 자 또는 변호사의 자격이 있는 자로 제한하고 있다. 즉 변호사 자격이 있는 자만이 판사나 검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검찰이 최근 검사임용방법에 대해 “변호사시험에 합격하지 않은 로스쿨 졸업생” 중 로스쿨 원장의 추천을 받은 성적우수자를 임명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나, 법원이 비슷한 판사 인턴제를 실시하겠다는 것은 모두 검찰청법과 법원조직법을 정면으로 위반하고 있다. 물론 그러한 방침에 따라 사후적으로 검찰청법이나 법원조직법을 개정한 후 임용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항변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그렇게 법을 개정하는 절차를 먼저 밟는 것이 순서라는 것이다. 그게 법치주의 아닌가?

검찰청법이나 법원조직법이 위와 같이 검사나 판사의 임용자격을 “변호사자격”이 있는 자로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 것은, 그들의 업무가 신의 영역에 속하는 막중한 업무이기 때문에 최소한 변호사자격이라는 검증절차를 통과한 자들로 검찰이나 사법부를 구성하겠다는 마지막 안전장치를 마련하기 위해서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다루는 신성한 직역에서 종사해야 하는 검사나 판사들이 법률적 지식과 경천애인의 품격을 갖추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법재앙이 되어 국민에게 엄청난 불행이 될 수밖에 없다. 선무당이 사람 잡더라고, 법적 마인드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는 자들이 검찰이나 사법부의 칼자루를 잡게 되면, 어디 조자룡의 헌 칼 쓰는 것 정도에 그치겠는가? 생사람 잡지 않겠는가 말이다.

지금도 일부 정치 판ㆍ검사들에 의한 사법적 농단이 자행되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고, 그러한 권력자에 대한 입맛 맞는 기소나 판결이 전무하다고 할 수 없는 판국에 최소한의 검증절차 - 변호사시험합격 - 없이 곧바로 로스쿨원장의 추천에 의해 검ㆍ판사를 임명하겠다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발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법과대학에 몸담고 있는 까닭에 로스쿨의 실상을 나름대로 일반 국민보다는 많이 접하고 있는 입장으로, 우선 로스쿨 입학생 선발과정부터가 불안하기 짝이 없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어떤 기준에 의해 어떤 학생들이 로스쿨 합격생이 되는지에 대한 객관적 기준이 애매모호하다는 것이 첫 번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기본적 스펙이 각종 입학지원자료로 제출이 되지만, 결국은 면접관들에 의해 구미에 맞는 자들이 로스쿨에 합격하는 것이 현실이다. 일부 로스쿨 면접업무를 본 교수들조차 누가 어떤 기준에 의해 합격하는지 모르겠다고 불안한 마음을 토로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거기에 로스쿨도 로스쿨신입생이 가급적이면 사회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집안의 자제이기를 바라는 것이 현실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교세를 확장하는 보이지 않는 기여를 기대하는 것 또한 현실이다. 그러다보니 현대판음서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스펙이나 각종 객관적 조건에 불리한 자들은 아무리 유능하다고 하더라도, 잠재적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아예 로스쿨입학에서부터 배제되는 불편한 진실이 또한 사실이다.

그런데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로스쿨 원장의 추천만으로 변호사시험을 아예 보지 않고 판ㆍ검사를 임용하겠다는 것은 말 그대로 판ㆍ검사라는 막중한 공직을 떡 주무르듯, 엿가락 늘리듯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위험한 발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그들은 변호사시험에 합격하지 않았기 때문에 판ㆍ검사를 그만 두게 되면 변호사자격이 없어 변호사로서 활동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인가? 물론 그것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사법고시도 그 동안 많은 문제가 없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유일하게 독재정권이 자기 마음에 맞는 자들을 함부로 임용하지 못하는 유일한 영역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사법부가 몇 차례의 사법파동을 겪으면서도 지금까지 민주화를 발전시켜 온 작은 힘을 보탤 수 있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사법연수생들이 주장하는 것은 단순한 밥그릇싸움의 문제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러한 문제는 하루 이틀에 속전속결로 끝낼 수 있는 사항이 되지 않는다. 보다 심도 있는 연구와 새로운 제도도입에 대한 신중한 검토가 이루어진 다음에 조심스레 결정해야 할 중대사항이다. 국민의, 아니 그대의 재산과 생명을 다루는 신 같은 종결자들을 함부로 임명하라고 백지위임할 수 있겠는가, 그대는......

지나친 편의주의는 상식과 원칙을 무너뜨리는 해악이 된다. 원칙으로 가자, 법치주의와 합리주의의 원칙으로! 조금은 기대가능한, 예측가능한 세상에서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즉흥적이고 편의적이 아닌, 너와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인식의 범위 내에서 말이다. 그대는 계속해서 밥그릇싸움에 불과하다고, 원칙을 주장하는 자들의 편의주의적 발상을 하는 자들에 대한 정당한 항변을 밥그릇싸움이라고 계속 폄훼할 것인가? 참 내, 정말 편의적이네......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