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법의 정치화, 민주주의의 위기를 불러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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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사법의 정치화, 민주주의의 위기를 불러오다
  • 법률저널
  • 승인 2025.03.28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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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이제 법정을 통해 정치적 대립을 해결하려는 불건전한 관행에 깊이 빠져들고 있다. 법원과 헌법재판소를 정쟁의 도구로 삼는 ‘정치의 사법화’ 현상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이는 사법부의 존재 이유와 기본적 역할을 훼손하는 위험한 상황이다. 사법부는 본래 헌법과 법률에 따라 분쟁을 공정하게 해결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며, 권력 기관의 행위가 법치주의 원칙에 부합하는지 감시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러나 최근 한국의 법원은 정치적 갈등 해소의 중립적 중재자가 아니라,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키는 진원지로 변질되고 있다.

특히 우려스러운 것은 같은 사안에 대해 판사와 법원에 따라 완전히 상반된 판결이 내려지는 현상이다. 이재명 대표 선거법 사건에서 1심은 징역형을 선고했으나, 2심은 무죄를 선고했다. 이는 대법원이 "2심이 1심 판단을 뒤집으려면 충분하고도 납득할 만한 현저한 사정이 있어야 한다"는 판시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증거나 증언 없이 판결이 뒤바뀐 사례다. 또한 울산 선거 공작 사건에서도 1심 징역 3년이 2심에서 무죄로 바뀌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치권은 판결의 유불리에 따라 태도를 180도 바꾸고 있다. 유리한 판결이 나오면 “사필귀정”이라 환호하고, 불리한 판결이 나오면 “정치 판결”이라 비난한다. 여야를 막론하고 이런 이중적 태도가 반복되면서 법원의 신뢰도는 땅에 떨어지고 있다.

이러한 정치권의 행태는 국민의 신뢰를 철저히 무너뜨리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회와 정당에 대한 국민 신뢰도는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국민은 더는 정치인들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한다고 믿지 않는다. 그들의 행동은 오직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만을 위한 것으로 비치고 있다. 여당은 야당 인사에 대한 수사와 기소를 정치적 승리로 여기고, 야당은 여권 인사들의 탄핵과 법적 처벌을 정치적 복수의 도구로 활용한다. 이처럼 상대 진영을 법적으로 괴롭히는 것이 정치의 일상이 되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정치권이 사법부를 이용해 정쟁을 벌이면서도, 정작 법적 분쟁을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법률 제정과 제도 개선이라는 본연의 임무는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야는 갈등 해소를 위한 입법 활동보다 상대방의 약점을 공격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 있다. 국회는 국정감사와 청문회를 정치 쇼로 변질시켰고, 법안 심사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정쟁으로 인해 국민의 삶과 직결된 중요한 법안들이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는 현실이다. 헌법재판소도 예외가 아니다. 이진숙 방통위원장 탄핵소추안 심판에서 찬반이 4대4로 갈린 것은 법리적 판단보다 정치적 성향이 작용했다는 의심을 키웠다. 국민 10명 중 4명이 헌재를 불신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이를 방증한다.

사법 체계가 제 기능을 하려면 재판 대상이나 판사, 법원에 관계없이 일관성 있는 판결이 나올 것이라는 국민적 신뢰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현재의 사법부는 마치 도박판처럼 판결이 예측 불가능하게 뒤바뀌면서 법적 안정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이처럼 사법이 정치화되면 사회적 갈등 해소라는 사법부의 본래 기능은 실종되고, 오히려 극단적 혐오와 분열만 증폭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과 같은 중대 사건을 앞두고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는 것은 우리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하는 심각한 도전이다.

국민은 이미 정치권에 등을 돌렸다. 투표율 하락과 무당층의 증가는 국민이 기존 정치에 절망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제 사법부마저 정치화되어 신뢰를 잃게 된다면, 우리 사회는 갈등을 조정할 제도적 장치를 모두 잃게 될 위기에 처하게 된다. 국민의 신뢰를 잃은 정치권이 사법부마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도구로 전락시키는 상황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위험한 현상이다.

정치권은 이제라도 법원과 헌법재판소를 정쟁의 도구로 삼는 행태를 중단해야 한다. 사법부 또한 정치적 편향성에서 벗어나 법리에 충실한 판단으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치의 본질인 협상과 타협을 통해 갈등을 해결하는 능력을 회복하는 것이다. 모든 문제를 사법부에 떠넘기는 ‘정치의 사법화’는 결국 민주주의의 퇴행을 가져올 뿐이다.

우리 사회의 분열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사법부 결정에 대한 존중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는 사법부에 의존하지 않고도 정치적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성숙한 정치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정치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해 법원이 정치의 대체재가 되고, 그 결과 사법부마저 신뢰를 잃는 악순환을 이제는 끊어야 할 때다. 국민의 신뢰는 민주주의의 근간이다. 철퇴를 맞은 정치권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첫걸음은 사법부를 정쟁의 도구로 삼는 행태를 중단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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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25-03-29 12:08:09
선거법 위반 재판의 경우 누가봐도 무죄인 사안인데 1심에서 유죄를, 그것도 징역형을 선고한건 대다수의 법조인들도 납득하기 어려웠죠. 그래도 2심에서 정상적인 판결을 내려서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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