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객관식을 악용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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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객관식을 악용하지 마세요
  • 안혜성 기자
  • 승인 2024.05.31 10:53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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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저널=안혜성 기자] 객관식 시험에는 ‘정답’이 있다. 물론 출제 오류로 인해 복수 정답이나 모두 정답 등으로 처리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그렇다는 말이다. ‘정답’이 있기 때문에 채점자의 주관적인 평가가 반영될 여지가 없다는 점은 객관식 시험의 큰 장점이다. 실력을 검증하고 당락을 가르는 시험에서는 다른 무엇보다 ‘공정성’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 객관식 시험은 신속하고 효율적인 채점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대량의 응시자들을 평가하기에 적합하다. 그래서 학창 시절에 치르는 중간고사, 기말고사, 대학 진학을 위한 수학능력시험은 물론 각종 공무원시험, 그리고 고시와 여러 전문자격사시험 등에서도 1차시험은 객관식으로 치른다.

물론 객관식 시험에는 단점도 있다. 제시된 선지 중에서 정답을 고르는 형식이기에 응시자의 표현력이나 창의력 등의 역량을 평가하기는 어렵다. 또 소위 ‘찍기’가 가능하므로 응시자의 실제 역량을 완전히 반영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출제에 오류가 발생할 수도 있고 제대로 정정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실력 검증이라는 시험 본연의 목적에 어긋나는 결과가 발생한다.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출제자의 편의에 치중하는 경우 응시자의 이해도나 응용력을 평가하기보다는 단순 암기 여부를 확인하는 데 그치기 쉽다는 점이다.

이 같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가 가능하다는 점, 출제가 가능한 범위나 문항 수 등에 한계가 있는 주관식 시험과 달리 다양한 분야의 주제를 폭넓게 다룰 수 있다는 점, 수천 명, 수만 명에 달하는 응시자의 역량을 주관식 시험만으로 검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객관식 시험은 가치가 있고 또 필요하다.

그런데 자꾸만 장점보다는 단점이 극대화되는, 혹은 악용하는 부적절한 출제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다. 지난 기자의 눈에서도 객관식으로 시행되는 세무사 1차시험이 지나치게 높은 난도로 출제된 점을 지적했는데 최근 치러진 공인노무사 1차시험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했다.

특히 이번 공인노무사 1차시험은 과목별 문항 수가 25개에서 40개로 증가하고 치러진 첫 시험으로 큰 관심을 모았다. 문항 수의 증가로 보다 세밀히 응시자의 실력을 검증하는 변별력 강화가 기대되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 결과는 수험생들의 기대를 크게 어긋난 듯하다. 문제는 단순히 문항 수가 늘어난 것이 아니라 난도도 급격히 상승했고 그 원인이 수험적으로 중요도가 낮은 부분의 지엽적 출제, 제한된 시험시간을 고려하지 않은 문제의 유형과 구성 등 때문이었다는 점이다.

공인노무사 1차시험의 사회보험법은 이전에도 종종 지나치게 지엽적인 출제로 수험생들의 비판을 받곤 했다. 법률저널이 진행한 설문조사의 응답자들에 따르면 올해는 그러한 경향이 한층 강화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사회보험법 외에 다른 과목들에서도 같은 문제가 발생했다고 한다. 기존에 출제되지 않았던 부분은 물론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교재나 강의에서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내용들이 다수 출제됐다는 것.

무엇보다 ‘공인노무사에게 요구되는 역량의 검증’이라는 취지에 맞지 않은 문제들, 누가 더 많이 암기하고 있는지, 혹은 잘 찍었는지를 확인하는 문제, 한마디로 말하자면 ‘떨어트리기 위한 문제’들이 많았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과연 무슨 위원회의 위원이 몇 명인지, 누가 어떻게 위촉을 하는지를 암기하고 있는 게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공인노무사에게 요구되는 역량일까? 수시로 개정이 이뤄져 합격 이후에는 전혀 의미가 없어질 수도 있는 지식을, 굳이 전문자격사가 아니라도 누구나 인터넷 검색으로도 간단히 찾을 수 있는 숫자를 단순 암기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데 무슨 의미가 있나.

객관식으로 치러지는 1차시험은 해당 시험을 통해 선발하고자 하는 분야에서 요구되는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지식을 폭넓게 물어보고 2차 주관식 시험을 통해 종합적인 이해도와 응용력을 검증하는 게 시험 유형이나 목적에 합당하다. 수험생들의 인생을 건 도전, 그들의 피, 땀, 눈물 앞에 시험 운영이나 출제, 채점의 편의가 우선시 돼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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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닉 2024-06-02 21:03:00
기존 시험 난이도로는 적정인원을 선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위원회 위촉시험범위에 들어가는 부분이고, 실무상으로도 알아야하는 부분입니다. 위원회 위촉은 이전 기사의 수험생 인터뷰 그대로 인용하신 것 같은데, 지엽적인 출제인지 아닌지는 수험생이 판단할 문제가 아닙니다. 수험생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만큼 난이도 조정을 통해 적정인재, 적정인력을 선발하기 위해서 변별력을 갖추겠다는 고용노동부의 취지는 존중되어야 합니다.

ㅇ어ㅓ이ㅣ 2024-05-31 11:53:09
그렇지 않은 시험이 없습니다. 시험의 변별력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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