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맞는 공부 방법을 찾은 것이 고득점의 비결”
“더욱 손쉽게 권리구제 받을 수 있는 방안 찾을 것”
[법률저널=안혜성 기자] 실력만 있으면 시험에 합격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분명 실력은 합격의 필요조건이다.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시험에 떨어졌다고 해서 꼭 실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시험이 있고 그만큼 많은 수험생들이 있다. 그리고 합격의 문은 극히 좁기에 대다수의 수험생은 합격의 기쁨 보다는 탈락의 쓴잔을 마시게 되기 마련이다. 물론 노력이 부족하거나 아직 실력이 갖춰지지 않아서 탈락하는 이들도 있지만 운이 없어서 낙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수험을 준비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가 봐도 실력이 출중함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합격하지 못하는 경우를 목격한 적이 있을 것이다. 하필 시험날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작은 실수 하나가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올 때도 있다. 그만큼 합격에는 실력 못지않게 운도 매우 중요한 요소다.
2020년 제38회 법원행정고등고시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아 수석 합격의 영광을 거머쥔 이경아씨도 합격 소감을 묻는 질문에 “발표를 보고도 믿기지 않았고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나는 운이 좋았을 뿐”이라며 ‘운’에 대해 이야기했다.
성문여고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이씨는 대학을 졸업한 후 사법시험을 준비해 2차시험에 6번 응시했고, 법원행시 2차시험에는 3번 응시한 끝에 최종 합격의 기쁨을 누리게 됐다.
각종 고시 중에서도 어렵기로 꼽히는 사법시험과 법원행시 1차시험에 합격해 2차시험에 도전할 자격을 수차례 얻었고 게다가 수석으로 합격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씨에게 실력이 부족했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때문에 “운이 좋았을 뿐”이라는 그의 겸손한 소감은 오히려 운이 합격에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준다.
하지만 이씨가 마침내 이렇게 중요한 운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강한 의지와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노력을 쏟고 실력을 쌓았는데도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때도 그는 도전을 포기하지 않았다. 거듭 탈락의 고배를 마시면서도 좌절하지 않고 스스로를 갈고 닦은 결과가 지금, 수석 합격의 영광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씨가 사법시험부터 시작해 법원행시까지 도전을 이어오게 된 것은 “지인이나 주변 법률문제를 접하며 법학을 모르는 일반인이 재판청구에 갖는 두려움이나 재판에 대한 신뢰를 느꼈고 국민들이 더욱 쉽게 법원을 통해 권리 구제를 받도록 돕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쩌면 이씨가 도전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이렇게 구체적이고 뚜렷한 목표 의식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수석 합격자에게 가장 궁금한 ‘고득점 합격의 비법’은 매우 단순했다. “나에게 맞는 공부 방법을 찾은 것”이 그 대답이다. 그렇다면 이씨를 수석 합격의 길로 이끌어 준 공부 방법은 무엇인지 자세히 들어보자.
먼저 다른 시험과는 다른 법원행시의 특이점에 대해 이씨는 “개인적으로는 변호사시험과 법무사시험의 출제 경향을 모두 가지고 있고 약술형도 출제되는 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때문에 사례형과 판례 서술형에 모두 대비해야 하고 이를 위해 2차시험을 준비할 때도 최신판례를 객관식 시험을 준비하듯 빠짐없이 파악하는 게 도움이 된다는 게 이씨의 생각이다. 주로 본안판단을 묻는 변호사시험에 비해 소송요건의 출제 비중이 높고 1, 2차시험 모두 기본 문제가 높은 비중으로 출제되는 점도 법원행시의 특징으로 꼽았다.
각 단계별 공부 방법에 대해서는 1차시험의 경우 “사람마다 맞는 공부 방법이 있지만 내 경우 문제 풀이를 통해 부족한 부분을 확인하고 키워드를 추출해 반복 학습하는 것이 실력 향상에 효과적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가능한 많은 관련 시험의 기출문제를 풀고 오답노트를 만들어 취약한 부분을 체크하면서 반복해서 공부했다.
1차시험 과목 중에는 형법에서 애를 먹었다. 사법시험과 다른 출제 경향이 낯설었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이씨는 법원행시 뿐 아니라 공무원시험, 경찰 관련 시험 등 최대한 많은 관련 시험의 기출 문제를 풀어 약점을 보완했다.
2차시험은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법원행시의 특징이라고 생각되는 요소를 고려해 수험에 반영했다. 법무사시험과 변호사시험의 출제 경향에 모두 대비했고 3년분의 최신판례를 사례와 약술 모두로 출제 가능하다고 생각해 정리했다. 기출문제도 법원행시에서 범위를 넓혀 법무사시험, 법원사무관 승진시험, 변호사시험까지 모두 정리했다.
이씨는 “법원행시는 약술형 준비가 특히 부담이다. 사견으로는 요약서나 기본서를 외워 쓰는 것도 좋지만 법학 과목의 기본 목차를 기준으로 중요 판례와 최신 판례, 관련된 논점도 언급해 되도록 많은 논점을 쓰는 게 득점에 유리하다고 생각한다”고 수험 노하우를 전했다.
아울러 “내 경우 요약서나 기본서의 내용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약술형 목차를 직접 구성하는 연습을 했고 기본서나 판례의 논점을 보면 약술형으로 목차를 구성하고 키워드를 적어봤는데 사례나 판례문제 대비에도 효율적이었다”고 조언했다.
그는 “법원행시는 2차시험 마지막 정리 기간이 두 달 남짓으로 짧아 체력적 부담이 크다. 내 경우 체력 문제로 공부 시간을 많이 확보하지 못해 답안 작성을 거의 하지 못해 불안했다”며 법원행시 마무리 공부 당시의 곤란했던 상황을 떠올렸다.
이어 “답안작성은 많이 할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혹여 내 경험을 듣고 답안 작성을 소홀히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당부와 함께 부족한 시간과 체력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시도한 여러 방안에 대해 소개했다.
그는 답안작성 대신에 기본서와 최신판례, 사례집을 보며 중요 논점의 목차와 키워드를 계속 적어 봤는데 이 방법이 실전에서 큰 도움이 됐다. 판례는 원문을 정확히 암기하기에는 부담이 커 키워드를 외웠고 중요 판례의 경우 키워드를 두문자로 만들기도 했다.
특히 “법조문은 가장 강력한 논거이며 득점 포인트라고 생각해 답안 작성시 최대한 많은 조문을 쓰려고 노력했고 형사소송규칙, 민사소송규칙 등도 필요한 경우 언급했다. 법조문은 암기하기 쉽기 때문에 논점에 해당하는 조문을 기계적으로 암기해 답안 작성시간을 단축했다”며 답안작성을 위한 노하우도 전해줬다.
답안작성 이야기가 나왔으니 보다 본격적으로 수석 합격자의 고득점 답안 작성 방법에 대해 들어보자면 이씨는 논점 파악을 최우선 과제로 상정하고 문제의 사실관계를 꼼꼼하게 읽은 후 판례의 사실관계와 같다면 판례에 따라 서술하고 만약 판례를 변형한 문제라면 관련 판례를 모두 찾아 서술했다. 여기에 판례와 사례의 논리구조를 파악하고 목차화하며 출제자가 요구하는 논점을 정확히 적시하는 것과 관련 키워드와 조문을 현출하는 것을 답안 작성을 지향점으로 삼았다.
이씨는 “법원행시는 1, 2차시험 모두 시간 안배가 중요하며 정확성이 보장되는 한 빠르게 풀수록 유리하다. 2차 답안 작성 분량에 대해 논란은 있지만 내 경우나 주위의 합격자들을 보면 6~7면을 작성하든 12면을 작성하든 논점과 키워드를 정확히 적시한다면 분량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나는 논술형 작성시 서술을 늘릴 욕심에 분량 조절을 못해 시간 안배에 실패하는 것이 최대 문제점이었기에 시간 조절을 꼭 당부하고 싶다”고 조언했다.
올해 2차 합격자가 예년보다 늘면서 한층 큰 부담으로 다가왔을 면접시험은 다른 수험생들과 마찬가지로 스터디를 통해 준비했다. 그는 “평소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사람들 앞에서 발언하는 것을 크게 두려워하지는 않았지만 면접은 달랐다. 토론에 사용하는 어휘는 일상적인 대화와 달라 적응이 쉽지 않았다”고 면접시험 준비의 고충을 토로했다. 특히 “2차시험 이후 공부와 면접 준비를 잘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데 면접은 요식행위가 아니므로 철저히 준비했으면 한다”는 조언을 덧붙였다.
수험기간이 길어질수록 스트레스도 누적될 수밖에 없다. 그에게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체력 문제로 학습에 지장을 받을 때와 합격을 확신했으나 낙방을 했을 때였다고 했다. 반대로 가장 즐거웠던 순간은 수험기간 중 고득점의 성취감을 느낄 때로 “모든 고통이 보상 받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모든 고통과 기쁨이 다 공부와 그 성과에서 나왔다. 이씨는 “고시생은 합격할 때까지 계속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고 공부가 잘 되지 않으면 슬럼프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다른 방법을 찾기 보다는 모의고사와 문제풀이 등 공부로 소소한 성취감을 쌓아올리는 것이 그나마 정답이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고 말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수험생들을 향한 응원에도 그간의 경험과 고민이 담겼다. 이씨는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것도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다. 고시생활이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쉽지 않음은 누구나 같기에 조언이라 해도 조심스럽기만 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나 역시 오랜 수험생활에 지쳐 슬럼프를 겪기도 했다. 수험생은 한 회의 시험에 모든 노력을 쏟으므로 낙방을 거듭할수록 합격이라는 목표에 대한 심리적인 장벽은 높아지지만 나 역시 고통을 극복한 것이 아니라 그저 견뎌낸 것일 뿐이다. 법원행시에 합격하겠다는 목표를 가졌다면 복잡한 생각은 묻어 두고 성실한 하루를 매일 쌓아올렸으면 좋겠다”고 진심이 가득한 응원을 전했다.
오랜 기다림이 있었지만 그만큼 더 값진 결실이다. 이제는 그 동안 갈고 닦은 실력과 마음을 펼쳐 보일 때다. “법원공무원이 되겠다는 마음을 가진 후 수험생으로서 막연히 국민의 재판청구권 보장이라는 목표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나 공직자로서는 국민이 더욱 손쉽게 권리구제를 받을 수 있는 구체적인 절차보장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앞으로 공직자의 태도를 고민하며 소양을 쌓는 시간을 보내겠다”는 그의 새로운 꿈이 현실이 될 날이 기대된다.
수험생활과 작별을 고하고 새로운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길은 오늘의 기쁨을 맞이하기까지 그를 지지하고 응원해 준 이들에 대한 감사의 인사로 시작됐다.
“오랜 시간 지지해주신 부모님과 형부와 언니, 제 합격을 기원해주신 분들과 도움을 주시고 기다려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제 찾아뵙고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