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범 변호사의 법정이야기(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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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변호사의 법정이야기(16)
  • 신종범
  • 승인 2014.12.05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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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의 방식

 

 

 

 
 

 

 

신종범 법무법인 더 펌(The Firm) 변호사

sjb629@hanmail.net
http://blog.naver.com/sjb629

어느덧 12월이다. 말 그대로 ‘어느 사이인지도 모르는 동안’에 또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올해도 처음 시작할 때는 여러 가지 계획을 세웠지만 돌이켜보니 제대로 이룬 성과는 없는 것 같아 후회스럽다.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것을, 부모님들께 더 잘해 드릴 것을, 주변 사람들을 좀 더 배려할 것을, 일에 좀 더 열정을 쏟을 것을 등등.. 한 해를 보내면서도 이렇게 많은 아쉬움과 미련이 남는데 인생을 마감할 즈음에는 어떨까 ? 예전에는 ‘죽음’이라는 문제에 대해서 말을 하기 꺼려하고 ‘죽음’을 준비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지만 요즘에는 ‘죽음’에 대해 현실적으로 고민하고 적극적으로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에 대한 책과 강의들도 많이 마련되어 있다. ‘죽음’에 대한 준비는 법적인 면에서도 중요하다. 죽을 권리(right of death)와 관련한 안락사와 존엄사 문제, 잊혀질 권리(right to be forgotten)와 사이버장의사 등 새로운 법적 쟁점들이 등장하였을 뿐만 아니라 사망 후 망인의 의사대로 법적 효과를 가져오는 유언은 이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어느 날 지인을 통하여 아주머니 한 분이 찾아오셨다. 단정한 옷차림과 차분한 목소리에 품위가 느껴졌다. 아주머니는 유언장을 작성하고 싶은데 조언을 해달라고 하셨다. 겉으로 뵙기에 연세가 많아 보이지 않고 건강하셨기에 유언장을 쓰시기엔 너무 이르지 않는냐고 말씀 드렸더니 몇 달전 남편분을 여의고 따님 내외와 함께 살고 있는데 자신에게도 죽음이 언제 찾아올지 모르니 미리 준비하고 싶고, 얼마 있지 않은 재산이지만 자식들 사이에 재산을 가지고 다툼이 생기는 것이 싫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편지 쓰는 것 같이 쓰면 되느냐고 물어 오셨다. 필자는 유언으로 효력이 발생하는 사항은 법률에서 한정하고 있어서 쓰고 싶은 내용 모두가 법률상 효력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과 무엇보다 유언은 법률에서 방식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으니 반드시 그 방식에 맞추어 작성되어야 한다고 말씀드렸다. 아주머니는 알겠다고 말씀하시고 다음에 유언장을 가지고 올테니 검토해 달라고 하셨다.

한 동안 아주머니께서 오시지 않아 잊고 있었는데 어느 날 연락이 왔다. 유언장을 썼는데 검토해 달라는 것이었다. 상담 약속한 날 오신 아주머니께 너무 오랜만에 오셨다고 하니 막상 유언장을 쓸려고 하니 많은 생각이 들어 잘 써지지 않았고 썼다가 버리기를 여러번 하셨다고 한다. 생각해 보니 그 마음이 이해 되었다. 난 아직도 죽음을 생각하기 조차 싫고 두려운데 죽음을 예견하고 생을 정리하면서 유언장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을 것인가. 아주머니는 봉투에서 종이를 꺼내 건네 주셨다. 펜으로 꾹꾹 눌러쓴 유언장이었다. 사랑하는 아들과 딸에게로 시작하는 유언장은 아주머니께서 살아오신 이야기, 자식들에 대한 고마움 등이 표현되어 있었고, 마지막으로 아주머니가 가지고 계신 재산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 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아주머니께서 작성해오신 유언장은 민법에서 정하고 있는 유언의 방식 즉,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 녹음에 의한 유언,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 비밀증서에 의한 유언,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 중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에 해당하였다. 아주머니는 유언장에 위와 같은 내용의 전문(全文)을 작성한 후 연월일과 ‘엄마가’라고 쓴 후 서명을 하셨다. 이 유언장을 나중에 아주머니 자식들이 보았을 때 아주머니께서 쓴 것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필체가 아주머니 필체였고, 그 내용이 어머니가 아니면 알 수 없는 내용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유언 내용에 불만을 가진 자식이 유언장의 효력에 대해서 다툰다면 아주머니께서 작성해 오신 유언장은 민법에서 정하고 있는 방식을 따르지 않았기에 효력이 부인될 것이었다. 민법에서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이 효력이 있으려면 유언자가 그 전문과 연월일, 주소, 성명을 자서(自書)하고 날인하여야 한다고 규정(제1066조)하고 있는데 아주머니께서 작성해온 유언장에는 주소, 성명, 날인이 빠져 있었다. 아주머니께 민법의 규정과 취지에 대해 설명드리고 빠진 주소, 성명을 자서하고 날인한 후 그 변경 내용을 다시 자서하고 날인하도록 하였다. 아주머니께서는 유언의 방식이 왜 이리 까다롭냐고 말씀하셨다. 때마침 유언의 효력에 관한 판결 몇 개가 나온 즈음이라 이를 소개해 말씀드리니 그제서야 이해를 하시는 것 같았다. 유언의 방식과 관련하여 최근에 나온 판결이니 여러분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첫 번째 사례는 망인이 “본인은 모든 재산을 아들 00에게 물려준다. 사후에 자녀 간에 불협화음을 없애기 위하여 이것을 남긴다”는 내용을 작성하고 그 말미에 작성연월일, 주민등록번호, 성명을 자서한 후 날인하면서 작성연월일 옆에 ‘암사동에서’라고 기재한 유언의 효력이 문제된 사안이었다. 항소심은 망인이 암사동에서 거주한 사실이 있으므로 위 유언장은 민법 제1066조에서 정한 요건에 부합하여 작성된 것으로 유효하다고 판단하였으나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단하여 그 효력을 부인하였다. “민법 제1065조 내지 1070조가 유언의 방식을 엄격하게 규정한 것은 유언자의 진의를 명확히 하고 그로 인한 법적 분쟁과 혼란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므로 법정된 요건과 방식에 어긋난 유언은 그것이 유언자의 진정한 의사에 합치하더라도 무효이다. 따라서, 자필증서에 의한 유언은 민법 제1066조의 규정에 따라 유언자가 전문과 연월일, 주소, 성명을 모두 자서하고 날인하여만 효력이 있고, 유언자가 주소를 자서하지 않았다면 이는 법정된 요건과 방식에 어긋난 유언으로서 효력을 부정하지 않을 수 없으며, 유언자의 특정에 지장이 없다고 하여 달리 볼 수 없다. 여기서 자서가 필요한 주소는 반드시 주민등록법에 의하여 등록된 곳일 필요는 없으나 적어도 민법 제18조에서 정한 생활의 근거가 되는 곳으로서 다른 장소와 구별되는 정도의 표시를 갖추어야 한다”

두 번째 사례는 망인이 증인을 A와 B로 하고 C 공증변호사를 찾아가 공정증서에 의한 유언장을 작성하였는데 망인 사후에 상속인 중 1명이 위 증인 중 한명인 B가 공증변호사 C의 장인(丈人)인 것을 문제삼아 유언의 효력을 부인한 사안이다. 법원은 “공증담당 변호사인 C의 장인은 배우자의 혈족으로 공증인법이 정한 ‘공증인의 친족’에 해당돼 유언 작성에 참여할 수 없는 증인 결격자가 맞다”, “공정증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결격사유 없는 증인 2명이 참여한 상태에서 작성되지 않으면 효력이 없다”라고 하면서 위 유언의 효력을 부인하였다.

세 번째 사례는 망인이 자필로 유언 내용을 작성하고 연월일과 성명을 자서하고 날인하였지만 주소를 따로 기재하지 않은 사안이다. 제1심 법원은 유언 내용 중에 주소가 있으므로 유언의 효력을 인정했지만 항소심 법원은 “주소가 따로 기재되지 않아 효력이 없다”면서 “유언장이 유언자의 진정한 의사에 맞더라도 요건을 갖춰 작성하지 않았다면 법적 혼란을 막기 위해 무효로 봐야 한다”고 하였다.

아주머니께서는 자신이 몇 날을 고민하고 여러번 고친 유언장이 하마터면 효력이 없을뻔하였다면서 이제야 안심이 된다고 하셨다. 유언장을 작성하시면서 마음이 어떠셨냐고 여쭤보니 지난 날을 돌아보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것에 감사함이 들었고 앞으로 살아갈 남은 생에 대한 열정이 더 생겼다고 하셨다. 인사를 나누고 사무실을 나가시는 뒷 모습에 잔잔한 여운이 느껴졌다. 2014년이 이제 한 달밖에 남지 않았지만 후회와 아쉬움 보다는 새해를 맞이하는 설레임과 새로운 희망을 꿈꾸면서 한 해를 잘 마무리 하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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