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일상이 정치(728)-한국 정치에서 참담함을 느끼는 이들을 위한 연민(compassion)

2025-01-17     신희섭
신희섭

2025년 1월 15일 현직 대통령이 체포되었다. 1,200명의 경찰 출동, 버스 차 벽, 철조망으로 요새화된 관저, 긴 대치 이후 체포. 이 상황에 대한 감정은 양가적이다. 법치주의가 구현되었다는 정의감과 한국 정치의 추락이라는 참담함을 동시에 느끼기 때문이다.

비상계엄 뒤처리 차원에서 한국 정치는 급속도로 추락 중이다. 대통령은 포고령 1호의 잘못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국회해산권이 있을 당시의 예문’을 그대로 베껴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특전사 정예 병력이 유리창을 깨고 국회에 진입한 이유는 “흥분한 군중에 의해 발생할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부하 탓을 하는 대통령, 황당한 핑계를 대는 대통령. 비상계엄으로 법치주의 따위는 무시했던 그 호기로움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자기 보신에 바쁜 대통령과 그 아래로 거짓말을 하고 악어의 눈물까지 흘리는 장군들이 있다.

비상계엄이란 엄청난 일을 저지르고 책임을 지려는 자가 한 명도 없다. 민주화 38년의 빛나는 역사를 가진 한국은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는 아프리카나 라틴 아메리카 국가 수준으로 전락했다. 뒤처리는 처참하다. 비민주주의 국가인 중국의 누리꾼들에게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이 칼럼이 보수진영을 공격하고, 향후 조기 대선이 치러진다면 진보 진영을 옹호하기 위한 글로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칼럼에 마음이 불편하면 이렇게 상상을 해보라. 2022년 대선에서 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당선되고 국회 의석 다수를 국민의 힘이 차지했다고 가정해 보자.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 대통령이 확인되지 않은 부정선거를 이유로 비상계엄을 하고 국회 활동을 금지시켰다. 게다가 이미 영부인은 명품 가방을 받은 것이 만천하에 공개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 대통령은 당연히 탄핵당해야 하고 부인은 공개적으로 수사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현재 보수진영의 대통령은 탄핵당하면 안 되고 부인은 보호받아야 한다고 믿는다면 그건 편파적이다. 진영논리를 따르는 것이고, 법치주의는 뒷전인 것이다. 영국에서 만들어진 근대 법치주의는 설령 왕이라고 해도 국민과 동일한 법을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법치주의의 근간 아닌가! 내가 지지한 누군가는 금품수수와 비상계엄이 가능하지만 내가 싫어하는 누군가는 불가능하다면, 이때 법이 문제인가 이런 사고가 문제인가?

클리세처럼 들리겠지만 지금 상황을 가장 잘 묘사하는 단어는 “참담하다.” 일 것이다. 그런데 참담이란 말로 적합할까? 참담의 국어 사전적 의미는 끔찍하고 절망적이라는 것이다. 이때 참은 참혹할 참(慘)자다. 담은 두 가지 한자를 사용한다. 맑을 담(澹)은 물이 넉넉하다는 의미와 물이 출렁이면서 점차 맑아진다는 뜻이다. 암담(暗澹)하다 할 때와 같은 ‘담’이다. 참과 담이 만나서 절망적이라 앞이 내다보이지 않는다는 의미가 된 것으로 보인다. 둘째 한자는 편안하다는 것과 참담하다를 혼용하는 담(憺)자다. 역시 비슷한 의미다.

한자의 의미도 현재 시민들이 느끼는 감정을 정확히 설명하지는 못하는 듯하다. 그럼 영어의 의미는 어떨까! 참담하다는 miserable과 disastrous와 terrible의 3가지가 많이 쓰인다. 그런데 3가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조금씩 다르다. miserable은 사정이 딱하고 비참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반면 disastrous는 재앙적으로 느낄 정도로 끔찍하다는 것이다. 마지막 terrible은 음식이나 일상이 매우 나쁘다는 것이다. 영어 표현은 현재 상황을 바라보는 측면을 분류해서 생각하게 해준다. 현재 상황은 인적인 재앙에 의한 것이란 점에서 disastrous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미래의 희망도 찾기 어려운 듯 보인다는 점에서 miserable 하다.

대부분의 국민은 현 상황이 착잡할 것이다. 그런데 전체 유권자의 40%에 달하는 중도 유권자거나 전체 유권자 중 10~20%를 차지하는 소극적인 보수 지지자들은 더더욱 착잡하다. 이들에게는 민주당이나 국민의힘 모두 대안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1월 들어 민주당 지지율은 36%(갤럽)에서 42.2%(리얼미터)이고, 국민의힘 지지율은 34%(갤럽)에서 40.8%(리얼미터)이다. 12월 탄핵 이후 조사에서 나온 민주당 37%와 국민의힘 27%와 비교된다. 민주당의 지지율은 제자리인데 국민의힘 지지율은 다소 올랐다. 최근 대통령 지지율 상승과 탄핵 반대 지지율이 늘어난 맥락과 유사하다. 갈 곳 없는 이들 중 일부가 다시 보수라는 그늘에서 적극적 지지자와 결집하는 것이다.

막장극으로 치닫는 비상계엄 이후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딱히 갈 곳이 없는 중도 유권자와 소극적 보수 지지층에게는 한국정치가 탄핵사태 이후도 참담할 것으로 보인다. 안타깝지만 유권자의 50%가 넘는 이들에게 현재 안식처는 없다.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단국대 초빙교수/베리타스법학원전임 /『일상이 정치』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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