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훈의 감정평가 인사이트 13] 감정평가 수험 단상

2024-11-08     이용훈
이용훈㈜대화감정평가법인

금주 생일을 맞아 수 십 통의 축하 문자를 받았다. 당일 라운딩 일정으로 귀가가 늦어 밤늦게나 일일이 감사 회신을 드렸다. 축하문자와 같이 도착한 꽤 많은 선물은, 카카오톡 덕을 봤다. 특히 선물할 정도의 친분인지 애매한 관계에서 온 선물은 카톡 생일 알림과 손쉬운 선물하기 기능 때문으로 보인다. 가장 큰 선물은 당일 아침 읽은 성경구절인데, 시편 37편의 주옥같은 말씀. ‘네 갈 길을 주님께 맡기고 주님만 의지하여라 주님께서 이루어주실 것이다. 조금만 더 참아라. 겸손한 사람들이 오히려 땅을 차지할 것이며, 그들이 크게 기뻐하면서 평화를 누릴 것이다.’ 미수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자에게 주신 위로의 말씀으로 받았다.

회사가 수습직원 채용을 마쳤다. 이맘때 감정평가사 자격시험에 합격한 이들. 올해 기수는 35기. 후배 몇이 수험생활을 하고 있다. 또 두세 권의 수험서를 매년 개정하고 있다. 17년 전에 합격자의 신분이었고 17년 간 수험 환경을 지켜봐 온 터라, 내년부터 감정평가사 자격시험과 관련한 수험 환경이 이렇게 변화됐으면 하는 바람이 생겨 금 번 기고에 담는다.

첫째, 답안지 작성 방법. 과목당 100분 시험이고, 과목당 10장의 답안지를 채운다. 100분 안에 열 장이면 부지런히 써야 한다. 악필인 사람들은 정자체로 쓴다고 애 많이 쓴다. 2, 3교시 이론과 법규 과목은 산식 없이 한글로만 채우는데, 이걸 100분간 손으로 해결한다. 한글자판을 쳤으면 시간은 1/3로 단축될 텐데, 왜 손을 고생시키는가. 채점자도 악필로 된 답안지 신경 쓰며 본다고 고생이다. 빨리 쓰는 능력을 재는 시험이 아닌데. 답안지 형식이 깔린 프로그램에서 자판으로 친 뒤 그걸 출력해 제출하면 안 되는지 아쉽다. 컴퓨터 설치 및 관리에 드는 비용 등을 고민해야겠지만.

둘째, 시험시간. 1교시 과목 감정평가실무는 계산과목이다. 공학용 전자계산기를 활용한다. 2, 3교시와 달리 산식이 많이 등장하고 대부분 계산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해결해야 할 문제는 넷. 이들의 약식 감정평가보고서를 답안에 작성한다. 현직 평가사가 가장 단순한 감정평가보고서의 의견서를 작성하는 데 족히 한두 시간 쓴다. 모든 자료를 다 찾아 놓고 이를 보고서 형식으로 전환하는 최소한의 시간이다. 1교시는 그런 약식 보고서 4개를 100분 안에 작성하는 테스트다. 이건 스피드 싸움에 불과하다. 감정평가 현장에서는 고민과 판단이 핵심이고 계산은 엑셀에 위임한다. 그 판단을 초스피드로 하고 계산도 번개맨이 되라는 무리한 요구를 수험생에게 하고 있다. 지금의 50% 많게는 100% 시간을 늘려줘서 양질의 답안지를 작성할 기회를 주면 어떨까. 스피드건을 내려놓고 기술점수를 정확히 채점할 고화질 카메라를 설치해 보자는 것이다. 다만, 충분한 시간 부여했으니 계산 실수로 인한 오답은 가차 없이 페널티를 받는다는 사전 안내가 있어야겠다.

셋째, 출제자와 채점자 관련. 공인중개사 시험은 응시자가 수능 다음으로 많다. 응시료 수입도 많고 행정심판 소송 등 이의제기가 빈번해 철저한 출제검토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출제자 수에 육박하는 검토자를 배치한다. 자신이 낸 문제의 오류를 당사자가 캐치하기 어렵다. 그걸 검토자가 수행해 준다. 한 문제를 놓고 치열하게 토론한다. 공격하고 방어하고. 그러면서 흠 없는 문제가 탄생한다. 그에 비해 감정평가사 2차 시험은 출제자만 있을 뿐 검토자가 없어 보인다. 그렇지 않았다면 일부 자료가 누락된 사례, 자료에 중의적인 표현을 쓴 사례는 없었을 것이다. 정확한 답이 없는 문제를 내는 사례도 그렇고. 채점은 어떤가. 채점 수당이 수험시장 학원들의 채점 알바 수당에도 못 미치는 형편없는 수준. 그건 채점자에게 봉사하라는 것이지, 한 사람의 일생이 걸린 정밀한 채점을 위한 대가 책정으로 볼 수 없다. 현실화시킬 필요가 있다.

그 밖에 소소한 건의사항이 있지만 논점이 분산되니 생략하고, 위 제안 셋 중 하나 정도는 수용해 줬으면 바람이다. 그중 하나를 꼽으라면 실무과목의 할당 시간. 현장에서는 느릿하지만 꼼꼼하고 날카로운 자가 유용하다. 속도만 빠른 허술한 보고서를 만드는 능력은 질색이다. 실력 있는 사람이 손해 보지 않는 시험이 되길 바란다.

이용훈
㈜대화감정평가법인 파트너 감정평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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