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딜레마 이슈와 면접시험
2024년 의대 증원에 대한 정부와 의사 집단의 갈등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2025년 의대 정원 2,000명 확대에 방점을 찍고 한 치도 물러설 의사가 없음을 천명했고, 의사 집단은 2,000명 산출의 근거가 무엇인지부터 따지고 있다. 2,000명이 도출된 회의 기록의 존재 여부조차 불분명하니, 정책적 의사 결정에 대한 신뢰는 차감된 상태다. 이제 2025학년도 수시 원서 접수마저 마감되면 의대 모집 정원은 손대기도 어려워진다. 원서를 받아둔 상태에서 의대 정원이 인위적으로 조정되면, 이제는 수험생 쪽에서 소를 제기할 명분이 생기기 때문이다.
의사 중에서는 의사 수 확대 자체에 대해서 반대하는 견해가 발견된다. ①필수 의료과목과 지방의료기관 의사 부족은 수가 개선 등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점 ②저출산 기조에 따라 의사 부족은 결국은 정상을 찾아갈 것이라는 점 ③의사 수 증원은 예상과 달리 건보 재정을 악화시키고 건보 부담을 증가시킬 것이라는 점 ④의사 수는 부족하지만 보건 관련 각종 지표가 건실하다는 점, 그 외에도 ⑤의학교육의 질이 저하되고 ⑥의대 정원 증가로 의대가 우수 인재의 블랙홀이 될 수도 있다는 점 등을 근거로 한다.
물론 여론은 대체로 의대 정원 확대의 방향성에 대해서 긍정적이다. 의사 집단 역시 정원 확대 자체에 대해서 명시적으로 반대하기보다는 정부가 의사 집단과의 충분한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서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비교되는 것은 변호사 수의 증가에 관한 역사적 경험이다. 법조인의 연간 배출 숫자는 1996년까지 300명이던 것이 2024년 현재는 1,700여 명으로 늘어났는데, 증원은 단계적으로 이루어졌다. 300명, 600명, 700명. 1,000명이 되었으며, 로스쿨 도입 후 1,700여 명이 되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 시절인 2003년 사법개혁위원회(사개위)에서는 법원, 법무부, 변호사회, 법학 교수, 행정부, 시민단체, 언론계에서 각 2인, 국회, 헌법재판소, 경제계, 노동계, 여성계에서 각 1인의 대표가 모여 오랜 기간 논의를 했으며, 당시에도 적정 법조인의 숫자에 대해서 여러 분야에서의 다양한 연구가 이미 축적되어 있었다.
의대 정원을 2,000명으로 확대하는 것은 이러한 단계가 생략되었고, 충분한 논의 과정 없이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회의 한 번으로 이루어졌으니, 반발하는 것도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특히나 변호사, 의사, 세무사, 교수 등 전문직에는 고도의 직업윤리를 요구할 때가 많다. 왜냐면, 그들의 비윤리적 행위에 대해서는 제3자가 판단하기 어려운 심연의 판단 영역이 있기 때문이고, 그들의 배임 행위는 의뢰인/환자는 육체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치명적인 위험을 초래한다. 자격 배출을 엄격하게 관리하는 이유다. 물론 경제학자들은 전문직의 배출 인원 통제를 베블렌의 지대이론으로 설명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시간이 지나 우리 사회의 제도가 발달할수록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급격한 변화를 추구해 가기는 어려워지고 있다. 이를테면 이제는 변호사 배출 숫자를 20년 전과 같이 급격히 바꾸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무변촌을 없앤다는 증원 논리는 힘을 잃었고, 변호사 숫자의 증가만으로 변호사 수임료가 기대한 만큼 낮춰지지는 못했다. 특히나 변호사 배출 숫자에 대해서는 로스쿨, 수험생, 현업 변호사, 국민 등의 이해관계가 팽팽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을 뿐 아니라 변호사 숫자 증원은 해당 이슈 외에도 다른 직역(변리사, 노무사, 법무사, 행정사) 등의 송무 대리권 부여 문제, 직역 통합 문제, 로스쿨 각 학교의 정원 확대 문제, 로스쿨 인가 대상 학교의 변경 문제, 판검사의 증원과 그에 따르는 예산 조달 문제 등의 다양한 문제를 한꺼번에 수면 위로 솟아오르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변호사 숫자의 배출 정원은 나름의 최적 균형(Equilibrium)을 이루고 있다고 볼 여지도 있는 것이다. 모두가 불만족하여서 바꾸지 못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제도 개선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것은 그만큼 한 사회가 활력을 잃고 기득권의 벽이 공고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사회의 각 집단의 이해관계도 그만큼 복잡해졌다. 몇 년 전 우버 택시의 도입이나 타다 도입이 실패한 것도 디지털 플랫폼과의 이해관계 충돌 상황에서 택시 기사들의 기득권을 보호하는 쪽으로 정책 방향이 잡혔기 때문이다. 이를 기술 혁신이 기득권에 의해 저지되는 사례로 보기도 하지만, 배달의 민족이나 카카오택시 등 디지털 플랫폼의 지배적 사업자가 된 이후의 상황을 보면 이에 대한 판단도 그리 간단치만은 않다.
이러한 이슈가 만약 면접시험에서 나오면 5급 공채, 로스쿨 입시 수험생 등은 어떻게 답변해야 할까? 늘 그렇지만, 딜레마성 질문에 대해서 OX의 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찬성해도 합격할 것이며, 반대해도 합격한다. 굳이 하나를 고른다면, 면접관이 어떤 답을 좋아할지를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수험생이 면접관의 관상을 보고 답변 방향을 정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니, 마음 가는 대로 소신있게 답변하면 된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답변에 좀 더 데이터가 담겨야 한다는 것이다. 선진국에 비해 우리나라의 의사 수가 어느 정도인지, 고령화와 저출산의 기조에 따라 의사 수가 얼마나 더 필요할지, 여기에 AI나 로봇 등에 의한 전문직 수요 감소도 고려되어야 하는지, 의사들의 입장은 어떠한지 등이다. 예를 들자면, 인구 1,000명당 국내 의사의 숫자는 2.6명이고, 미국은 2.7명, OECD 평균은 3.7명이다. 합계 출산율은 2023년 기준 0.7명 수준이며, 국내에서 의사의 연봉은 평균적으로 3억 원가량이며, 이는 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이다. 한 해에 평균적으로 3,000명가량의 의사가 배출되고 있다. 단순히 내 의견만을 충분한 근거 없이 이야기하는 것은 공허하다. 면접에서 좋은 답변은 면접관도 생각해 보지 못한 통찰력을 담고 있거나, 사실적, 통계적 근거를 담고 있다.
올해 의대 정원 확대는 정부의 갈등관리 역량, 정책적 의사 결정 과정에서 소통의 중요성 등에 대해서 여러 가지 시사점을 던져준다. 특히 면접시험 준비생들에게는 곱씹어볼 만한 화두이기도 하다.
김용욱 인바스켓 대표, 변호사
citizen@hanmail.net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