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후회하지 않을 권리

2024-09-13     안혜성 기자

[법률저널=안혜성 기자] 최근 공인회계사 최종합격자 발표가 있었다. 올해도 우수한 성적을 거둔 수석과 최연소 합격자의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모든 수험생이 부러워할 타이틀을 차지한 두 합격자의 수험생활이 꽤 다른 모습을 보였던 점이 기억에 남는다.

먼저 수석 합격자인 김나현 씨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람도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자신을 한계까지 몰아세우는 방식을 선택했다. 그는 집 근처의 도서관에서 혼자 공부를 했는데 도서관이 개방하는 아침 7시에 1등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 자정이 될 때까지 공부를 하다가 마감 노래를 들으며 꼴찌로 도서관을 나섰다고 했다.

식사는 어머니께서 싸 주신 건강한 도시락이나 콩떡으로 해결하고 양치 후 다시 공부를 시작하기까지 채 30분이 걸리지 않았다. 샤워를 하는 시간이나 걸어 다니는 시간조차 허투루 쓰지 않았다. 그런 자투리 시간마저 필기가 필요 없는 인강을 듣거나 세법 암기 사항을 녹음한 것을 들으며 꽉꽉 채워 사용했다.

그렇게 잠, 식사 등 생존을 위해 필요한 시간을 최소한으로 유지하면서 일주일에 100시간의 공부 시간을 확보했다. 당연히 그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모든 것을 다 바쳐서 공부하는 매 순간이 고통스러웠고 잠들 때마다 내일도 오늘과 똑같은 하루를 살아내야 하는 것이 두려웠다고 했다.

하지만 김 씨는 “수험생활은 지독하게 외롭고 괴로운 게 정상이다. 수험생활 중 편안함을 찾지 말고 모든 순간 본인을 한계까지 밀어붙이며 버텨내야 한다”고 생각했고 실천했다. 그는 “내 수험생활은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단 하루도 후회가 없다”고 했다. 스스로 선택하고 후회 없이 보낸 나날은 약 1년 8개월 만에 초시 동차로 수석 합격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최연소 합격자 정인서 씨의 수험생활은 조금 달랐다. 그는 모든 사회생활이나 인간관계를 단절하고 수험에만 몰두하지는 않았다. 수험 시작부터 올해 1차시험 직전까지 계속 과외를 했으며 울고 웃는 연애도 해보고 친구들, 가족들과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스스로 선택한 일이 부담으로 다가와 힘들다는 생각에 혼자 울기도 했지만 집 밖에도 나가고 아직 사회 구성원이라는 생각도 할 수 있어서 오히려 도움이 되는 부분도 있었다고 했다.

정 씨는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 ‘하루 12시간 공부, 7시간 수면’처럼 이상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밤늦게까지 놀다가 4시간만 잔 날도, 공부하기 싫어서 중간에 멈췄던 날도 많았다”고 자신의 수험생활을 소회했다.

공부 속도가 너무 느린 게 아닌가, 정확히 이해가 안 되는데 그냥 넘어가도 되는 건가, 주어진 기간 내에 이 모든 것을 끝낼 수 있을까 등의 고민도 수없이 했지만 그는 자신이 선택한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잠시 쉬어가는 날은 있어도 다시 마음을 잡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랬기 때문에 정 씨의 수험생활에도 후회는 없었다.

두 합격자의 수험생활은 꽤 다른 모습을 보였지만 둘 다 자신이 선택한 대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했고 그래서 후회도 없다는 점은 같았다. 그런데 만약에 이들이 합격을 하지 못했더라도 후회가 없었을까?

문득 사법시험을 준비했던 한 수험생의 말이 떠올랐다. 그는 처음부터 도전의 시간을 스스로 정했다. 결국 그는 합격하지 못했지만 “내가 정해둔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고 했다.

같은 경험을 해도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은 다르기에 직접 겪어보지 않고서야 어떤 마음이 들지 알 수 없겠지만 그래도 해보는 데까지 해본 후에 스스로 멈추기로 결정했다면 끝내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아쉬움은 남을지언정 후회는 없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변호사시험 오탈자들의 상황이 더욱 안타깝다. 설득력 없는 명분에 실익도 애매한 제도로 인해 그들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할 권리, 후회하지 않을 권리를 잃었다. 조속히 제도 개선이 이뤄져 꿈을 빼앗긴 이들이 후회 없이 도전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