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속 빙점
요코는 자신이 나쓰에의 딸 루리코를 교살한 사이시의 딸이라는 말을 듣고, 모범림에서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기도했다. 그러나 꺼질 듯 말 듯 한 생명의 등불은 다시 소생된다. 아사히 신문에 연재된 빙점을 본 독자들의 빗발치는 항의와 애원에 미우라 아야코는 요코를 다시 살리게 된다. 독자들은 요코를 사랑한 듯하다. 반면, 안방에서 젊은 의사 무라이와 밀회를 즐긴 나쓰에는 용서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요코가 죽어가던 응급실을 찾아온 다카키는 요코의 출생 비밀을 풀어놓는다. 훗카이도 대학의 수재 미쓰오가 남편이 전쟁터에 나간 하숙집 아줌마 게이코와 간통을 해 낳은 딸이었다. 다카키는 게이조가 원수를 사랑하는 것을 일생의 과제로 삼는다는 말을 믿고 요코를 맡겼다. 죽음의 문턱에서 깨어난 요코를 위해 오빠 도루는 친모 게이코를 찾아 나섰다. 뱃고동 소리가 들리는 부둣가 옆 미쓰이 해산물상점 주인의 처 게이코. 그녀는 너무 요코를 닮았다. 선뜻 말을 걸지 못하고 나온 도루는 아버지 게이조의 친구 다카키의 노모 장례식에서 다시 그녀를 만났다. 그리고 요코의 지난 18년의 삶에 대해 들려줬다. 무거운 마음을 갖고 집으로 돌아간 게이코는 교통사고로 입원했다. 그러나 요코는 친모와의 만남을 거절한다. 대신 그녀가 방문한 곳은 고아원이었다.
고아원에서 돌아온 요코와 그녀를 입양한 아버지 게이조는 죄의 문제를 놓고 대화했다. 게이조는 어느 목사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큰 돌은 옮긴 후 다시 제자리로 갖다 놓을 수 있지만 작은 조약돌는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가르침이었다. 작은 죄가 오히려 해결하기 어렵다는 교훈이다. 게이조는 양심 속에 숨어있는 죄의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고 요코에게 실토했다. 요코의 출생의 비밀을 들었던 게이조는 전쟁터에 나간 남편 그리고 홀로 남겨진 게이코와 하숙생 나카가와 사이의 잘못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18년 전 나쓰에의 행동은 아직도 용서하지 못하고 있다.
소설에는 요코의 오빠 도루를 사랑하는 준코가 등장한다. 그녀가 요코에게 편지를 보냈다. 편지 내용은 자신은 사이시의 딸이며 네 살 때 입양되어 훌륭한 부모님 아래 양육되었는데 한때 살인자 아버지를 저주하며 방황하다 교회를 다니면서 속죄를 깨닫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요코가 건내 준 편지를 본 게이조는 순간 나쓰에와 자신의 죄를 보게 됐다. 밀회 때문에 루리코를 죽음으로 몬 나쓰에, 나쓰에와 무라이에 대한 증오로 요코를 자살로 몰고간 게이조. 부부는 죄인이었다. 요코의 가족과 급격히 친밀해진 준코는 어느날 요코와 나쓰에 그리고 게이조와 함께 모범림 숲을 거닐었다. 나쓰에의 손목을 잡고 다정하게 독일가문비 숲을 지나가던 준코. 자갈밭을 지나 강변 앞에 들국화를 내려놓고 선 나쓰에에게 준코가 꿇어 엎드려 용서를 구했다. “저는 사이시의 딸이에요. 저를 마음대로 처단해 주세요. 저는 아버지의 죄를 빌기 위해 살아왔으니까요.” 준코의 고백은 게이조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게 했다.
그러나 요코는 친모 게이코를 용서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시간은 흘러 요코의 가정에 한 통의 편지가 배달된다. 게이코의 남편 미쓰이가 보낸 편지였다. 그는 참전 중 노인과 어린아이에게 행한 잔인한 학살을 고백했다. 그는 전쟁 중 동물로 타락한 인간을 보았다. 참전 중 그의 부인이 삿포로 처가에서 나가와와 행한 간통을 통해 태어난 한 생명을 낙태하지 않은 것을 감사했다. 이를 통해 자신의 죄가 가벼워진 것을 느낀 미쓰이씨. 그는 아내를 용서했다. 게이코가 기다하라를 간호하는 요코를 찾아갔다. “요코, 용서해 줘.” 병실을 나가버리는 요코. 때마침 노을 앞 유빙이 한 방울의 피가 떨어뜨려진 것처럼 붉게 물들었다. 유빙이 불타고 있었다. 요코가 어느새 게이코를 향해 수화기를 들었다. ‘어머니, 죄송해요.’ 게이코의 목소리를 기다린다. 빙점에서 인간의 원죄와 속죄를 말하려 했던 작가는 속 빙점에서 이웃 국가에 전쟁을 일으킨 일본에 참회를 촉구하고 있는 듯하다. 대동아전쟁에 참전한 미쓰이가 수많은 인명을 학살하는 장면을 떠올리며 회개하는 모습이 실마리가 되어 주인공들 사이에서 용서의 끈이 이어지는 파노라마를 보면 이를 간파할 수 있다. 여성 작가의 용기 있는 고백에 일본 정부도 화답할 차례다.
박상흠 변호사(법무법인 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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