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훈의 감정평가 인사이트 3] 설명력
수 천 년의 기록 역사를 지닌 성경은, 원본을 찾을 수 없다. 수많은 사본만 현존한다. 사본의 개수는 40만여 개. 사본을 2만 5천 개로 추정한다는데 사본별로 16개 변형이 있다 하니, 그렇게 세면 40만 개로 불어난다. 과연 어떤 게 진본에 가까운 사본일까. 성경의 기록 언어는 헬라어, 히브리어, 아랍어다. 그 중 히브리어는 자음만 기재한다. 초성만 표기돼 있는 걸, 원래 문장으로 읽어야 한다. 필사가가 잠시 졸면, 자음 앞뒤를 바꿀 수 있다. 혹은 자음 몇 개를 중복해 적을 수도 있다. 의도적인 개입도 추측할 수 있는데, 본인 생각에 오타로 보이는 부분을 자발적으로 수정할 때다. 그렇게 수많은 사본을 대하는 현대 해석자들은 원본을 추적하며,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상황을 상정하게 된다. 책의 전반적인 취지, 앞뒤 맥락, 각 권의 유기적인 연결 등에 주안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원어를 접하지 못하는 일반인들은, 과연 현대어로 제대로 번역돼 있을까, 또 벽을 만난다. 그렇지만 이미 베스트셀러다. 오류와 수정의 역사를 이유로 신뢰성이 무너졌다고 제쳐 놓을 수 없는. 대부분의 문장이 현대적 의미로 설명될 수 있다. ‘설명력’은 훼손되지 않았다.
최근 B 신도시에 관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2, 3년 전에 비해 아파트 가격이 반 토막 났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3~40% 하락 거래를 포착하고 이를 2, 3년 전 최고가와 비교한다. 2, 3년 전 최고가를 찍은 세대와 큰 폭의 하락 거래된 건이 같은 동, 호수는 아닐 것이다. 조망이 달랐다든지, 층수가 다르다든지. 그도 아니면, 증여 성격의 거래일 수도 있다. 반 토막에 집중하다 보면, 최고가 대비 몇 % 하락했다는 내용만 포격한다. 가격 상승기와 하락기의 가격 흐름을 대조시키려면 더 설득력 있는 자료들을 나열해야 한다. 이 단편적인 기사만으로 B 신도시의 아파트 가격이 반 토막 났다고 누구를 설득할 수 있겠는가.
감정평가보고서의 설명력을 높이려고, 결과물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어떤 설명들이 등장할까. 거래가격은 높다는데, 수익이 그에 따라가지 못하는 수익성 부동산. 수익성 부동산의 거래 당사자가 ‘수익률’ 고려 없이 매매할 리 없다. 이때의 수익률은 임대소득과 부동산 가치의 비율일 텐데, 임대 소득은 낮아도 시간 지나면 타 지역보다 가격 상승이 크다는 논리를 펼 수 있다. 부동산 급등기에 그런 현상이 종종 나타난다. 최근 2, 3년 내 강남지역이 그랬다. 아파트 분양가를 올릴 수밖에 없는 이유로 원가 상승을 꼽는다.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분양가를 책정할 시행사는 없다. 단, 함정이 있다. 아파트 시공비 상승이 모든 지역의 분양가를 끌어올려야 할 당위성을 부여하지만 분양성과는 이와 무관하다. 분양률이 저조한 지방에서, 아파트 분양가의 상승을 설명할 수 있지만 분양받아야 할 타당성을 수분양자에게 설득하지 못한다. 원가가 상승해 분양가를 그렇게 올려야 한다면, 그 분양가를 흡수할 수 없는 지역에서 사업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이 오히려 설명력이 높다. 몇 달 안 된 거래가격에 구애 없이 감정평가보고서의 시장가치가 거래가보다 높은 것은 무엇으로 설명할까. 거래 당사자의 사정은 알 수 없지만 ‘저가거래’를 꺼낸다. 실력은 좋은데 당일 컨디션 때문에 모의고사 망칠 수 있는 것처럼. 비정상적 사유가 있었을 것으로.
위와 같은 큰 틀의 방법론적인 설명 외에도, 알게 모르게 설명력을 높이는 깨알 같은 tip도 있다. 주변에 산재한 가격 자료 중, 원하는 가격대의 자료만 골라내는 것이다. 보고서에서 불리한 자료 코빼기도 안 보이면 당장은 반박할 수 없지만, 보고서에 없는 꽤 많은 자료를 수고롭게 누가 찾아내면 설명력은 와해된다. 해석을 통해 설명력을 높이는 전략은 훌륭하다. 현재 임대소득은 낮지만, 그건 계약 초기 임대료가 동결된 것이고, 계약기간이 얼마 남지 않아 충분히 올려 갱신할 수 있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높다. 상황변화를 잘 포착해 기술하는 전략도 바람직하다. 막혔던 하늘길이 열려 텅 비었던 호텔 객실이 해외 관광객으로 채워진다는 전망은, 과거 해외관광객으로 객실점유율이 높다가 무역 분쟁이나 팬데믹 등으로 인해 객실이 파리 날리고 있다는 현황 분석이 설명력을 부여한다.
최근, 거짓말을 덮으려 거짓말을 양산하다가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지점에 이르러서야 두 손 든 사례도 있다. 납득할 수 없는 거짓말의 생명력은 짧다. 설명하기 어려운 결과물이 담긴 감정평가 보고서는 감정평가사의 수명을 단축시킬 수 있다.
이용훈
㈜대화감정평가법인 파트너 감정평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