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구사의 도전이 감동적인 이유
[법률저널=안혜성 기자] 어린 시절에 즐겨보던 만화책 중 ‘타이의 대모험’이라는 작품이 있었다. 타이라는 이름의 작은 소년이 동료들과 함께 마왕으로부터 세계를 구하기 위한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였는데 주인공과 그의 동료들뿐 아니라 악역 중에서도 개성 있고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많았던 작품이다.
수많은 등장인물 중에서도 제일 좋아했던 캐릭터는 ‘포프’라는 마법사였는데 처음 등장했을 때는 실력도 없으면서 허세를 떠는데 정작 위험한 순간이 되면 동료들도 저버리고 줄행랑을 치는 비겁한 인물이었다. 그런 포프가 왜 좋았을까.
여러 면에서 포프와 대척점에 있는 타이는 순수한 성격에 아무리 강한 적에게도 맞서는 용기를 가졌으며 신이 세상을 지키기 위해 만든 최강의 전사인 용의 기사와 공주의 사이에서 태어나 타고난 재능도 출중한 전형적인 주인공이다. 반면 포프는 작은 시골 마을 대장장이의 아들로 우연히 마을을 방문한 용사를 동경해 억지를 부려 제자로 들어갔지만 실력도 부족하고 성격도 그리 좋지 않아 주인공을 돋보이게 해주는 개그 캐릭터에 불과했다.
그런데 타이와 함께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며 포프는 달라졌다. 도망쳤던 곳으로 돌아가는 아주 작은 용기에서 시작한 변화는 스스로를 희생해 친구를 구하려 하고 심지어 그 친구를 돕기 위해 죽어서도 마법을 사용하는 기적을 일으키기도 한다.
마음은 물론 실력도 괄목상대한 포프는 어느새 대마왕에게 오히려 성장세는 타이보다 놀랍다고 인정을 받고 타이 일행을 무너뜨리기 위해 가장 먼저 없애야 하는 존재로 평가받았다. 또 한때 가장 막강한 적이었던 상대가 죽음의 순간에 자신이 아닌 포프를 살려달라고 눈물을 흘리며 마족이 아닌 인간의 신에게 기도를 하는 감동적인 장면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한없이 작고 약한 존재였던 포프가 흔들리고 방황하면서도 노력하고 성장하는 이야기는 타고난 능력자들의 활약상보다 큰 감동을 주었다. 이런 생각은 비단 기자만의 것은 아니었던지 타이의 대모험의 팬 중 꽤 많은 이들이 포프가 진(眞)주인공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무척 오랜만에 포프를 떠올리게 됐던 것은 최근에 읽었던 무협 장르의 웹소설 속의 한 인물 때문이다. 해당 소설 속에 등장하는 세력은 크게 백도와 흑도, 마도로 나뉘는데 백도의 경우 도리, 예의, 명분을 중시하고 무공 연마 역시 정도를 따라가는 쪽이라면 흑도는 정도보다는 샛길, 도리나 명분보다는 돈과 힘, 예의보다는 의리가 중요한 쪽, 요즘 세상으로 말하자면 깡패나 조폭과 비슷한 집단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마도는 한발 더 나아가 무공의 최정점에 닿기 위해서는 인간의 길 자체를 벗어나는 것도 개의치 않는 광신도들이다.
주인공은 고아로 동네 검무단에서 키워지다가 납치돼 가혹한 어린 시절을 겪으며 독(毒)공을 익히게 된다. 납치범이자 학대범에서 어느새 스승이 된 이들과 작별을 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주인공이 독공과 허언을 적극 활용한 심리전 등으로 흑도를 통일하고 천하제일에 오르는 이야기가 대략적인 줄거리다. 주인공도 상당히 매력적이었지만 유독 눈에 띈 것은 ‘구사’라는 인물이었다. 그는 한 흑도 세력의 중간 간부쯤 하고 있었지만 주인공을 만나 곤경에 처하면서 작은 객잔의 점원으로 처지가 바뀌는데 염소수염의 볼품 없는 외모에 허접한 실력으로 여기 치이고 저기 치이며 웃음을 자아내는 역할이다.
하지만 구사는 기죽지 않는다. 막강한 실력자 앞에서도 할 말은 하고 의지박약에 요령이나 부리던 모습을 버리고 남자는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고 외치며 수련을 거듭한다. 비록 포프와 달리 구사는 마지막회까지도 강자로 거듭나지는 못했지만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가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구사가 결국 고수가 됐을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매일매일 성장해 더 멋지고 강한 남자가 됐을 거라고 생각한다.
수험 역시 무공 연마와 비슷한 면이 있다. 반드시 합격을 한다고 장담은 할 수 없지만 매일매일 꾸준히 노력을 하면 실력이 쌓이고 목표에 가까워질 수 있다. 그러다 보면 기연(奇緣)도 따라오지 않을까. 하늘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