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평가 산책 194-담보 인플레이션

2020-12-18     이용훈
이용훈

‘벼락거지’란 말이 생겼다. 벼락부자가 졸지에 졸부가 됐다면 벼락거지도 어쩌다보니 그리 됐단다. 집값 인플레이션의 파장이다. 소득의 중가속도나 소득규모에 비해 최근 몇 년 간 집값 인상폭이 너무 가팔라서다. 수익성부동산의 전형적인 임대차 형태가 주택 전월세시장에서 굳어진 것도 특징적인 현상이다. 전세만 받는 곳은 거의 없고 전세금 일부를 월세로 환산해 받는 구조가 정착됐다. 연봉 몇 퍼센트 올라봐야 월세 인상분으로 상쇄된다. 문제는 자연스럽게 ‘노동’의 가치가 하락했다는 점이다. 열심히 일해도 살림살이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인다면 근로의욕 저하로 이어질 것이다. 참 난처한 일이다.

감정평가사법 개정안을 받아봤다. 사전탁상을 금지시키겠다는 내용도 있다. 정식 감정평가를 의뢰해서 추정가격을 받아보는 것까지는 허용해도 슬쩍 가격정보만 채가는 행태를 근절시키고자 하는 시도로 보인다. 대부분 이와 관련한 불쾌한 기억 한 둘은 떠올릴 수 있다. 내가 용쓰며 내 보낸 평가서가 대출실행에 맞물려 들어가지 않고 시중에 떠돌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다. ‘이 곳에서 이만큼 내 줬는데 네가 더 내 줄 수 있냐?’는 가격흥정의 희생제물이 된 것이다. 특히나 ‘draft' 가 찍힌 고가의 부동산 평가보고서를, 의뢰자는 진열상품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가격쇼핑 현상이 여전하다. 그러나 개정 법률에 담길지는 불투명하다. 관행이 견고하고 사전 정보 교환을 봉쇄할 수 없는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이다.

집값 인플레이션 추세를 보며, 담보가격의 인플레이션도 생각해 봄직하다. 현재 어느 정도 오버페이스인건 맞다. 특정 지역 특정용도의 토지가 밀집돼 있는 단지에서, 전반적으로 매매가격보다 담보가격이 조금 위에 형성돼 있기도 하다. 며칠 전 매매계약을 체결하고 잔금 대출을 받기 위한 담보의뢰에서 담보가격이 매매가격을 웃돈다. 지극히 정상적인 거래로 보일 때도 그렇다. 신도시 등에서 공급되는 택지는 최고가를 써낸 입찰자가 가져간다. 공정한 경쟁의 결과물이므로 시장에서 보는 적정 가격일 것이다. 담보가격이 이것도 살짝 넘길 때가 있다. 경매도 최고가 낙찰이지만 본인이 산 가격에 얼마를 얹어 되팔 요량이면 낙찰가는 시가보다 조금 쌀 것이다. 그러나 그걸 되판 사례라면 그건 시가다. 택지의 낙찰자가 실제 토지 개발자에게 차익을 얹어 매도한 가격도 시가일 것이다. 담보가격이 그걸 넘길 때도 많다. 담보가격만큼 대출이 나가는 건 아니다. 대출비율, LTV에 걸려 깎여 나가므로 그 안전펜스를 믿는 것이다. 정상거래인데도 담보가격을 높이기 위해 ‘대상물건의 최근 거래는, 인근 가격수준 대비 다소 저가 거래된 것으로 판단됨’이라는 문구를 쓸 때 어쨌든 평가자는 좀 찝찝할 것이다.

담보물의 안정성은 물건마다다. 시가는 비슷해도 회수 가능성은 또 달리 봐야 한다. 금융기관은 LTV로 지역과 물건유형에 따라 차별한다. 당연한 조치다. 담보물의 회수 용이성은 음식점 테이블 회전수로 볼 수 있다. 그 가격에 살 사람의 방문이 잦으면 안정적인 것이다. 또 안정성은 유사 물건의 낙찰가율로도 가늠된다. 낙찰률이 100%를 넘어선다는 것은, 시가가 계속 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시장에 팽배해 있다는 확증이다. 그 때 담보가격이 최근 매매가격을 넘어서도 안정성 문제는 불거지지 않는다. 개발의 막바지 단계에 이른 담보물도 리스크는 덜하다. 그간의 취득가격은 과거의 시가로 봐야 한다. 인허가 등 행정절차가 완료됐다면, 시가는 분양 프리미엄을 어느 정도 머금고 있어 통상 담보물가격의 기준선인 매매가격을 저 뒤안길로 보내도 된다. 그 오버슈팅 정도는 알아서 판단해야 할 것이다.

반대로 최소 1-2회 유찰을 거쳐 낙찰되는 분위기에서, 담보물 가격은 현 시가에 턱없이 부족하다고 봐야 한다. 낙찰포기물건도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말아야 한다. 매매 진열대에 엉덩이 오래 붙이고 있는 물건도 스스로 재고물건임을 인증한 셈이다. 가격을 더 내려야 한다. 또 정방향의 셈법과 역방향 셈법은 늘 다르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된다. 정 주행은 과거의 과격이고, 역주행은 미래가 투영된다. 투입된 돈의 현재가치와 장래 벌어들일 돈의 현재가치는 괴리가 크다. 안정성을 추구한다는 것은 확실한 미래에만 역주행을 허락하는 것이다.

담보가격 슈팅 문제가 종종 들려오고 있다. 의뢰처에 따라, 특히 대주단을 모집하는 증권회사 의뢰 물건은 관행적인 슈팅 경향이 있다. 증권사가 이 모든 리스크를 안고 있어 상대적으로 평가자의 위험 부담이 적다고들 하지만, 계약금을 뺀 잔금 전부 혹은 매매대금 전부를 담보대출로 충당하는 구조가 대부분이어서, 담보가격은 매매가격 한 참 위에 있어야 의뢰도 되고 대출실행으로 수수료도 받는다. 그런 구조가 담보 본연의 가치를 훼손한 셈이다.

관행이라고 안심했다가 백에 하나라도 사고 나면, 평가자는 칼날 위에 서게 된다. 오버페이스가 지나쳐 골대 한참 위로 쏴 버린 공은 못 찾을 수 있다. 고가 감정 사고는 항시 ‘설마’와 ‘그 정도는’이 자초한다.

이용훈 감정평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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