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검찰 총장 직무정지’는 검찰 중립성 흔드는 만행이다
일 년 가까이 끌어오던 추미애 법무장관과 윤석열 총장의 갈등이 마침내 임계점을 넘었다. 퇴근 시간인 저녁 6시경, 추 장관이 예고도 없이 기자회견을 열어 윤 총장을 직무에서 배제하고 징계를 하겠다고 밝힌 것은 전격적이었다. 이날 추 장관은 법무부가 그동안 윤 총장을 감찰한 결과 중대한 비위 사실을 발견했다면서 다섯 가지의 구체적인 사례를 적시했다. 그러자 윤 총장도 곧바로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기 위해 한 점 부끄럼 없이 소임을 다해왔다”며 “위법·부당한 처분에 대해 끝까지 법적 대응하겠다”고 선언했다.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의 이런 전면전은 사상 유례가 없는 것으로, 법무장관이 현직 검찰총장에게 직무배제 명령을 내린 것은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다.
당장 검찰 내부는 물론 참여연대와 국내 최대 변호사단체인 대한변협도 추 장관의 이런 조치를 비판하고 나섰다. 변협은 성명서를 통해 “추 장관은 검찰총장을 직접 감찰한 결과 심각하고 중대한 혐의가 확인됐다고 밝혔다”며 “그러나 일부 사유는 이미 언론과 인사청문회 등을 통해 공개된 사안이고, 새롭게 제기된 사유들도 국민이 검찰총장의 직무를 정지시킬 정도인지에 대하여 납득할 만큼 명백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변협은 “직무정지 조치는 검찰조직 전체와 국민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적법한 감찰을 통해 진상을 규명한 후 신중하게 처리해야 마땅함에도 너무 성급하게 처분을 내린 것이 아닌지 우려스럽다”며 추 장관에게 재고를 촉구했다.
진보성향의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도 전날 논평을 통해 추 장관 조치에 대해 직격탄을 날렸다. 참여연대는 “법무장관이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 청구와 별개로 검찰총장 직무를 정지한 것은 과도하다”며 “징계심의 결과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검찰총장의 직무를 정지하는 것은 검찰수사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선례를 남길 수 있다”며 대통령이 나서서 문제 해결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론도 돌아섰다. 국민 10명 중 6명 가까이 추 장관의 이번 조치가 잘못했다고 평가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추 장관의 윤 총장 직무 정지에 대한 평가를 물은 결과 ‘잘못한 일’이라는 응답이 56.3%에 달했지만 ‘잘한 일’이라는 응답은 38.8%에 그쳤다.
일선 평검사에서 고검장까지 추 장관에 ‘재고’를 요청하며 항의 행렬에 동참하고 있다. 고검장들은 성명서를 통해 “징계 청구의 주된 사유가 검찰총장의 개인적 사안이라기보다는 총장으로서의 직무 수행과 관련된 내용이라는 점에서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보장과도 직결되는 문제”라며 “형사사법의 영역인 특정 사건의 수사 등 과정에서 총장의 지휘 감독과 판단 등을 문제 삼아 직책을 박탈하려는 것은 아닌지 깊은 우려를 표하는바”라며 재고를 요청했다. 일선 검사장 17명도 “검찰개혁의 목표가 왜곡되거나 진정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검찰총장에 대한 직무정지와 징계 청구를 냉철하게 재고해 바로잡아달라”고 촉구했다. 윤 총장도 직무 정지 효력을 멈춰달라는 집행정지를 신청한 데 이어 본안 소송까지 제기함으로써 본격적인 법정 다툼에 돌입하게 됐다.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대미문의 추 장관의 행동은 개탄스럽다. 그의 직업이 과연 판사였는지도 의심스럽다. “우리 윤 총장님”이 하루아침에 “축출 윤 총장”으로 급변한 것은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가 발단이었다. 여당의 당적을 가진 추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핑계로 칼을 휘두르며 정권에 대한 수사를 막자 파투났다. 추 장관의 이런 일련의 행동을 보면 헌법은 고사하고, 부당한 정치적 외압을 막기 위해 마련해둔 검찰청법의 법률조항도 그의 안중에는 없고, 그의 머릿속에는 지금 오직 ‘윤석열 축출’밖에는 없는 것 같다. 윤 총장을 제거하지 않으면 재집권이 어려워지므로 그를 반드시 없애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파묻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검찰개혁’과 ‘공수처’는 권력의 수사를 막기 위한 위장술임이 드러난 셈이다. 그의 바람대로 눈엣가시 같은 윤 총장을 쫓아내고 정권 비리를 덮을 수 있다면 대한민국은 죽은 사회이므로 또다시 촛불을 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