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낙하산 외교관’에 직업 외교관 일할 맛 나겠나
해외 공관장 인사 과정에서 ‘낙하산’ 관행이 이어지면서 개선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정 라인 또는 정치권 낙하산 출신의 비(非)외교관들이 공관장 요직을 독식하면서 외교가에선 전문성을 좀먹고 직업 외교관들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외교관은 국가를 대표하여 외교교섭, 파견국의 경제적 이익증진, 자국민보호 등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지키는 첨병이므로 외교적 능력을 갖춘 인물이어야 한다. 무엇보다 외교관은 국가를 대표하여 외교교섭을 수행하는 중요한 임무를 가지므로 개인적인 자질이 요구된다. 외국어에 능통한 것과 통찰력, 건전한 판단력 이외에도 상대방에게 호감과 신뢰를 줄 수 있고, 사교적이고 모나지 않은 자질을 갖춰야 한다.
특히 ‘외교관의 꽃’이라 불리는 대사는 외교관 중 가장 높은 직급이므로 전문성이 더욱 요구되는 자리다. 대사는 한 나라를 대표하여 다른 나라의 정상을 외교적 목적으로 만나거나 국제기관에 파견되기도 한다. 특명전권대사란 말처럼 조약문 채택에 ‘동의’할 수 있다. 대사를 파견하기 위해서는 접수국의 명시적 동의(아그레망)도 필요하다. 한 번 대사가 되면 명함에 ‘Ambassador’라고 붙이며 평생 대사 호칭을 받을 만큼 상대국 사회의 모든 면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전문성이 중시되는 직분이다. 주요국에 파견되는 대사들은 외부 영입하는 사례도 적지 않지만, 전문성과 외국어 실력 등 외교적 능력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나 공정사회를 외치는 문재인 정부의 외교관 인사, 특히 직업 외교관이 아닌 특임공관장의 비율을 늘리면서 대선 기여도 등 논공행상에 따른 연줄의 낙하산 인사가 횡행하고 있다. 그 어느 곳보다 엄격하게 전문성 검증이 이뤄져야 할 외교관 자리를 정권 실세의 전리품으로 여기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노태강 주스위스대사와 조현옥 주독일대사 등 신임대사 10명에게 신임장을 수여했다. 조 전 수석은 각종 인사·검증 실패와 환경부 블랙리스트 문제 등으로 비판을 샀다. 그는 물러난 지 1년 5개월 만에 독일대사 자리를 맡게 돼 전형적인 회전문 인사다.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참 나쁜 사람’으로 지목당했던 노 전 차관도 스위스와 별다른 인연이 없는 낙하산 인사라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 6월 임명된 문재인 대통령의 ‘운동권 동지’ 장경룡 주캐나다 대사도 낙하산 공관장으로 꼽힌다. 지난해 3월 주중대사에 임명된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도 전문성보다는 청와대의 코드 인사다.
문재인 정부 들어 ‘외교부 순혈주의를 깬다’는 명분 아래 비(非)외교부 인사를 대사, 총영사에 임명하는 이른바 특임공관장 비율이 늘면서 직업 외교관들이 ‘일할 맛 나겠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주재국에 대한 전문성도 없고 단지 선거 캠프에 기여했고 코드에 맞는다고 전리품 얻듯이 공관장이 되는 것은 문제라는 비판이다. 정치적, 정무적 인사로 임용되는 ‘낙하산 외교관’은 주어진 임무와 책임에 무게를 두기보다는 정치인이나 정부 고위 관료 혹은 각계 유력인사의 방문 영접과 안내 등 소위 ‘의전’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정치 유력자들에게 줄을 대는 ‘정치인 외교관’은 유력인사들에 대한 융숭한 접대의 대가로 더 좋은 자리로의 영전이나 승진을 거머쥐기도 한다. 임무에 충실했던 직업 외교관들에게는 좌절감과 절망감을 안겨주게 된다.
낙하산 비(非)외교관은 성공할 수 없다. 더는 정치인 외교관이 나라 망신시키는 일은 없어야 한다. 특히 특임공관장 논란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특임공관장 임명에 대한 개선책이 시급하다. 자격심사를 더 엄격히 해야 한다. 다행히 최근 국민의힘 정진석 의원은 최근 특임공관장에 대한 자격심사를 강화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외무공무원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특임공관장으로 임명될 사람의 외국어 능력, 교섭 능력 등을 고려하여 적격 여부를 결정하도록 했다. 또 특임공관장 자격심사위원회에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추천한 사람을 포함하도록 함으로써 정부의 특임공관장 인사를 견제하고 감시할 길을 열어놓았다. 더는 해외공관장 자리가 논공행상의 전리품이 돼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