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평가 산책 186 / 감독과 견제

2019-12-20     이용훈
이용훈

내 인생 최고의 책은 ‘성경’이다. 인생을 감독하고 감시하고 견제하는데 이만한 책이 없다. 현대물리학에서 말하는 우주의 탄생과 소멸의 원리도 성경에 등장한다. 특히 소멸에 관한 얘기를 한 어부출신이 말하는데 처음 읽을 때 소름이 돋았다. 천상병 시인은 ‘소풍’으로 칭한 짧은 인생을 마치면 하늘로 돌아간다고 했는데, 소풍도 시간과 장소를 제약받는다고 생각하면 인생도 결국 누군가의 감독아래 있는 것이 아닌지. 인생만 감시 카메라 따라 붙는 게 아니다. 공직자, 가맹점 본사, 자산가는 감사원과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이 불철주야 감시하고 있다.

최근 나라장터에 올라온 감정평가 용역이 하나 있는데, 공고명은 ‘2020년 비주거용 부동산 등 감정평가사업’이다. 예산이 부가세 포함 19억여 원에 달한다. 감정평가 빅 펌 기준 한 해 매출의 3% 수준이므로 그냥 지나칠 법인은 없을 것이다. 약 250개의 시가 100억 원 상당 꼬마빌딩을 감정평가해서 상속·증여세를 부과하기 위함이란다. 여기서 2가지 의문이 들 것이다. 그동안은 시가보다 낮은 과세표준을 기준으로 세금을 덜 거둬왔는지 그리고 한 해 19억 원의 예산으로 꼬마빌딩 모두에게 상속, 증여만큼은 시가대로 과세할 수 있는지. 전자는 ‘예’고 후자는 ‘아니오’다. 꼬마빌딩 뿐 아니라 모든 부동산의 과세표준이 시가에 미치지 못하므로 꼬마빌딩만 특혜를 받았던 건 아니다. 또 첫 해부터 모든 꼬마빌딩을 평가할 수 없어 최소의 예산을 책정한 것으로 보인다. 추정하기로는 100억 원 상당 꼬마빌딩 한 개당 5-10억 원 세금 추징 효과가 있어, 이 조치만으로 1000억 원 이상 세수를 늘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사실 ‘꼬마’가 웬 말인가. 프라임 빌딩에서 보면 꼬마지만, 서민 눈에는 거인 중의 거인이다. 자산가의 절세 투자처로 각광받았다는데, 불합리한 절세 영역은 북극 빙하 녹듯 서둘러 사라져야 한다. 제대로 먹힌 국세청의 견제다.

금융기관도 내부에 감사부서 감독부서를 두고 있다. 본청 세무조사면 회사의 탈세 항목 뭐라도 하나 건져가야 한다는 우스갯소리 있는데, 내부 감독부서도 부서의 존재감을 잃지 않으려면 감독받는 부서의 잘잘못 하나씩은 콕 짚어야 한다. 은행도 수준차이가 있다. 1금융권과 2금융권의 여신관리 시스템을 보면 그렇다. 딱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다. 자체감정을 해서 대출을 할 때도 역량 차이가 확연하다. 오피스텔, 다세대주택 대출건은 대출금액도 작고 분양계약서 확인도 쉬워 자체감정을 종종 하는듯하다. 동일 평형의 분양계약서 금액이 층화된 경우, 이를 간파하지 못하는 건 2금융권이다. 예컨대 2억 원 분양세대가 10개, 3억 원 분양세대가 2개인 단지가 있다. 3억 원 분양세대에 2억 원의 대출을 이미 해줬다면, 대출금액은 전액 분양금액을 납부하는데 쓰였을 것이다. 실제 분양가격은 2억 원일 것이다. 매매금액 전액 대출을 위한 허위분양계약서를 거르지 않고 내보낼 만큼 허술하다는 얘기다. 이런 걸 내부 감사, 감독부서는 잡아내야 한다.

공시가격 대책을 국토부에서 내놓고 있다. 형평성과 투명성을 동시에 잡는 일은 그만큼 어렵다. 업무수행자 뿐 아니라 결재라인 전부 심지어 회사까지 연대책임을 묻겠다는 개선책도 있다. 또 업무수행능력 함양을 위해 감정원에서는 ‘자격’이 있는 직원만 공시가격산정 업무에 종사할 수 있게 하겠단다. 자체 자격시험 통과도 중요하지만 가격에 대한 균형감은 몇 시간 교육과 학습만으로 습득되지 않는다. 『감정평가 및 감정평가사에 관한 법률』의 내용을 소개하고 싶다. 법 24조에는 ‘감정평가업자는 그 직무의 수행을 보조하기 위하여 사무직원을 둘 수 있다’고 했고, 38조에는 ‘협회는 다음 각 호의 사람에 대하여 교육·연수를 실시하고 회원의 자체적인 교육·연수활동을 지도·관리한다’고 하면서, 그 대상에 24조에 따른 사무직원을 두고 있다. 감정평가업자의 직무 수행을 보조하는 사무직원은 1년 내내 현장조사에 투입되는 자다. ‘1만 시간의 법칙’을 적용받는데 거리낌이 없다. 감정평가사협회 사옥도 널찍하게 신축했는데, 분기마다 협회에서 공시업무를 담당하는 감정원 직원들을 교육받게 하는 것은 어떨지. 국토부도 감정평가업자에 대한 감정평가 타당성 조사만 실시하지 말고, 감정원의 공시가격 산정 타당성 조사를 감정평가사협회에 의뢰하는 ‘견제’ 조치를 취하는 건 어떨까?

이용훈 감정평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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