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평가 산책 183 / 공동주택 분양가격 산정 2
4년 전으로 기억한다. 이 지면에 분양가상한제 논의를 두 번에 걸쳐 실었다. 분양가상한제 탄력적 운용방안이 나왔던 바로 그 때다. 정부정책 방향에 부합하도록 재량의 폭을 넓힐 때면, ‘탄력적’이라는 용어를 중용한다. 당시 주택 분양시장은 침체였다. 경제 전반적으로 그랬다. 경기 부양하기 위해 돈을 풀든지 인력 고용을 늘려야 했는데, 건설 경기 활성화 카드를 빼면서 분양가상한제를 손질했던 것으로 보인다. ‘허울뿐인 제도를 놔둬서 뭐하냐?’, ‘경기 부양의 의지를 시장에 강하게 호소하라!’ 이런 시각이 강했다. 당시 필자는 중립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러면서도 족쇄가 풀렸을 때 그 뒷감당을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4년 지나 똑같은 논의를 하고 있다. 혜안은 아니었지만 4년 전에도 이런 추측은 할 수 있었다. 분양시장이 달궈지면, 아파트 가격이 폭등하면, 정부는 창고에 처박아 두었던 이 제도를 분명 다시 손에 쥘 것으로. 달라진 점은, 분양가 통제의 선포를 넘어 엄포를 놓은 것이다. 부동산 특히 공동주택이 거주대상인지 투자대상인지에 대한 해묵은 논의를 지금 펼쳐봐야 실익이 없다. 정부가 내놓은 세부적인 통제 기준에 문제가 없는지 곁가지를 치는 게 현명하다.
공동주택의 분양가를 구성하는 요소를 단순화시켜 보면 토지와 건물가격이다. 감정평가의 대상은 토지이며, 토지가격을 택지비로 부른다. 대부분의 언론에서는 택지비를 ‘산정’한다고 오해하고 있다. 거나했던 회식 다음 날 1차부터 4차까지 이어진 회식비용을 회식 참가자 수로 나눌 때는 단순 계산에 의해 정한다. 평가하고 말고 할 게 없다. 빠뜨리지 않고 모든 항목을 넣고 공평하게 배분하면 된다. 택지비는 그렇게 산정하는 게 아니고 평가를 해야 한다. 감정평가사의 판단 결과로 택지비 평가액이 결정되므로 분명 감정평가의 영역이다.
그런데, 택지비를 평가하는 자에게 다소 억지스러운 굴레를 씌웠다. ‘토지의 조성에 필요한 비용추정액을 고려한 감정평가방법으로 합리성을 검토하라’는 규정이 그 하나다. 수도권 외곽에서는 꽤 넓은 면적의 농경지나 임야지를 확보해서 개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파트 개발사업의 출발점이 개발되지 않은 땅이었으므로 취득과 조성비용이 명백히 드러나게 되지만, 서울에서 아파트를 건설할 만한 미개발지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취득과 조성 과정이 개입하기 어려운데, 비용추정액에 의한 검토를 어떻게 하겠는가. 단서 조항이라도 있었으면 했고, 그도 아니면 임의규정 정도로 정리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 볼 수는 있다. 재건축 구역 안에 있는 조합원들의 재산을 취득(실제는 현물출자)하는 비용과 미동의자의 청산비용, 국공유지 취득 비용 등은 해당 토지를 개발하기 위해 투입한 비용이다. 그런데 이를 비용추정액으로 보면, 택지비 평가액은 조합원의 분양가를 결정하는 대지비와 등가를 이룬다. 그럼, 일반분양 세대의 분양가는 조합원 분양가와 무차별해진다. 모든 리스크를 짊어진 조합원이 위험에 상응하여 얻은 프리미엄을 철저히 박탈하는 건 아니지 않는가.
또 하나, 택지비 평가액에서 배제하라는 ‘현실화, 구체화되지 않은 개발이익’은 무엇인가. 대지의 가치는 어느 정도의 분양수입을 만들 수 있는 공동주택 부지인지에 따라 결정된다. 강남의 고분양가 때문에 강남지역 공동주택부지의 몸값이 천정부지인 것. 재건축단지, 재개발단지는 개발하는 즉시 개발이익은 현실화된다. 물론, 사업초기보다는 사업완료 시에 더 구체화되고 현실화되겠지만, 전철역 유치 소식과 개통 단계 간의 현격한 가격 격차와는 비교할 수 없다. 살짝 낀 ‘거품’을 걷어내라는데, 거품이라고 봐야 하는지도 의문이고 미미한 거품을 깔끔이 걷어내는 게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굉장히 선언적인 규정이 아닐 수 없다.
택지비를 평가하는 일과 택지비를 검토하는 일 모두 서울 지역에서는 어렵고 불편한 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 감정평가의 영역에 정부정책 기조가 덮어져, 부조화와 어색함이 묻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다.
이용훈 감정평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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