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촌 ‘신림동’이 사라진다는데
봉천동·신림동·남현동 이외에는 동 이름이 없는 관악구가 대대적인 동이름 변경작업에 나선다. 관악구는 최근 이를 위해 동명칭변경추진위원회와 추진반 구성에 들어갔다. 위원회는 의원, 시민단체, 주민 등 각계 전문가 16명으로 구성된다. 관악구의 동명칭 변경시도는 이번이 네번째로 성공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지방자치법이 개정돼 과거에는 자치단체에서 읍면동의 명칭 및 구역변경에 관한 한 행정자치부 장관 및 시?도지사의 승인을 받아야 했으나, 개정법에는 자치단체장에게 그 권한이 모두 위임됐다. 주민투표법에 따라 동명칭 변경을 추진할 수 있게 되었고 투표권자 3분의 1이상 참여와 과반수 이상의 찬성으로 동 명칭을 변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관악구는 인구가 53만여명으로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5번째로 많다. 그러나 동이름(법정동)은 신림·봉천·남현동 3개뿐이다. 중소도시 규모만한 ‘거대한 법정동’을 관리하기 위해 관악구는 행정동 명칭을 법정동에 봉천1동·2동…, 신림1동·2동… 등의 숫자를 더하는 방식으로 분동(分洞)을 했다. 봉천동은 본동부터 11동까지 12개의 동으로 나눠져 있다. 신림동은 본동부터 13동까지 14개 동이나 된다. 인구가 늘어 분동할 때마다 무슨 학급 나누듯 숫자를 더해 갔다니 참 게으르고 성의 없는 게 공무원들이다 싶기도 하다. 행정편의적인 분동으로 신림3동 옆에 신림4동이 있는 게 아니라 신림13동이 위치하게 되는 기이한 결과를 초래해 초연길이면 숫자로 동을 찾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신림동(新林洞)은 일대에 숲이 무성해서, 봉천동(奉天洞)은 높은 언덕배기에 올라앉아 하늘을 떠받들고 있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50년대까지만 해도 계단식 논이 빽빽했다고 한다. 1963년 서울시가 도심 불량주택을 철거하면서 이주민들이 몰려왔고 수재민들도 옮겨왔다. 1975년 서울대가 이전해 온 뒤로는 신림동 일대에 하숙촌과 고시촌이 생겨나 오늘날 신림동은 고시의 메카로 통하게 됐다. 이제 이곳에서 달동네의 모습은 찾을 수 없다. 숫자 붙은 숱한 봉천?신림동들이 사라지듯, 이곳을 지나온 고단했던 한 시대도 저물었다.
하지만 고시촌의 상징처럼 불리는 신림동은 또 한차례 기로에 서 있다. 전성기에 우후죽순으로 들어섰던 학원, 고시원, 독서실, 고시식당 등 각종 수험인프라들이 이제 애물단지로 돼 가고 있어 사업자들의 고민이 날로 커져가고 있다. 최근 고시제도의 변화, 특히 사법시험 수험생들의 절대수가 감소한데다 인터넷의 발달로 지방간의 정보격차가 줄어 고시촌에 머물 장점이 하나둘 없어지고, 게다가 장기간의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고시촌에 상주하는 비용이 높아져 수험생들의 고시촌 유입이 현저히 줄면서 상당수의 수험인프라들이 유휴공간을 채우지 못해 존폐를 거듭하고 있다.
모든 사업자들이 살아남기 위해 인수와 합병, 고시뿐만 아니라 여타 수험생들을 유치하려는 등 저마다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고 있지만 그것도 이전투구식 경쟁에 그쳐 시너지를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신림동의 동명(洞名) 변경을 계기로 고시촌의 모든 사업자들도 틈새 시장이나 기존의 업종, 수험생들에 의해 창출되는 경쟁시장(Red Ocean)에서 벗어나 창조에 의해어 얻어지는 경쟁없는 시장 즉, ‘푸른바다’(Blue Ocean)와 같은 새로운 영역의 시장 개척으로 활로를 모색하는데 진력(盡力)을 기울여야 한다. 경쟁시장으로만 무너져가는 고시촌을 막을 수 없다. ‘블루오션’만이 진정한 달동네 이미지를 벗는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