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 & JUSTICE] 알쏭달쏭 청탁금지법 해설- 청탁금지법과 만나게 될 금품수수 공직자들

2018-08-16     정형근












정형근 교수
경희대 로스쿨

※ 이 글은 법조매거진 <LAW & JUSTICE> 8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

이번 호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경우들이 김영란법의 적용을 받을 수 있는지 사례로써 살펴보기로 한다. 필자가 직접 경험한 경우도 있다.

1. 결혼한다고 장롱 값 요구한 군법무관

변호사 개업한지 6개월이 지났을 무렵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군법무관으로 근무 중인 동기였다. 그는 곧 결혼을 할 예정인데, 그날 오후에 신혼집으로 들어올 장롱 값을 지불해야 한다면서 돈 500만원을 빌려 달라고 했다. 그는 사법연수원 다닐 때 같은 반이었지만, 나이 차이도 있고 하여 특별한 친분은 없었다. 50명 정도가 속한 같은 반에 편성되어 얼굴을 알고 지낸 사이였다.

그런데 20여 년 전 그때는 사법시험 합격자에 대한 인기가 다소 있었던 시기였다. 젊은 나이에 군법무관으로 근무 중인 상태에서 결혼하려고 구입한 장롱 대금이 없다는 게 이상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경제적으로 오죽 어려웠으면 나에게까지 부탁하나 싶었다. 그래서 500만원은 어렵고 한 300은 보내 줄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그 돈이라도 보내달라고 했다. 300만원을 그가 불러준 계좌번호로 보냈다. 그러고서 아무래도 뭔가 찝찝한 마음이 들어 수원에서 개업한 동기 변호사에게 전화를 했다. 그 분은 나보다 두 살 정도 많은 나이에 시험에 합격하였기에, 우리는 반에서 조장을 맡아 친하게 지냈었다. 그 형에게 군법무관 하는 아무개가 장가가는 데 장롱 값이 없다고 돈을 보내달라고 해서 300을 보냈다는 사실을 전해주었다. 그랬더니 그 분은 대뜸 “야! 바보야! 그런 애한테 사기를 당하냐. 오늘 오전에 나한테도 장롱 값 500만원 빌려달라고 전화했길래 어디서 사기치려고 그러냐?”면서 딱 잘랐다고 했다. 그러면서 “너는 연수원 다닐 때 그런 애가 어떤 앤지 몰랐냐?”고 핀잔을 했다. 순간 멍해졌다. 진짜 사기를 당한 건가 싶었다. 연수원 동기라고 부탁을 해서 들어준 것인데, 연수원 때부터 그가 그런 평판을 받았는지 몰랐다. 실제로 나는 그가 법무관이라는 것만 알았지 구체적인 소속도 몰랐고 연락처도 알지 못했다.

아무튼 그런 일이 있은 후 얼마의 세월이 지난 후 그가 전화를 했다. 아마 1년이 지나지 않은 때로 기억한다. “형이 보내준 돈 잘 썼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내가 보내준 돈을 잘 썼다고? 자기에게 돈 보내줄 이유가 전혀 없는데, 정말 사기 친 거 맞구나 생각하였다. 그렇다고 그 당시 돈을 돌려받기 위해서 무슨 조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변호사 하면서 수임료나 성공보수 떼이는 일이 하도 많다 보니 그랬는지, 아니면 연수원 동기와 돈 300가지고 다투는 것이 체면 구기는 일로 생각해서였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늘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어린 친구에게 당했다는 나쁜 기억으로 남았다. 그래서 지금도 그 때의 일을 회상하고 있다. 아무튼 세월 속에 그 일은 묻혀져 갔다.

법원, 검찰의 인사이동이 있을 때면, 깨알처럼 적혀진 판사, 검사의 이름을 살펴보곤 했다. 아는 분이 어느 법원, 검찰청으로 가는지 무심코 보다가 어떤 이름 앞에 눈길이 멈췄다. 내 돈 300만원 받아간 그 친구의 이름이 인사이동 명단에 있었다. “음, 이런 친구도 한 자리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스쳤다. 십여 년이 지났을 때 신문에 주기적으로 실리는 판, 검사 인사 이동 명단 중 부장들 이름 속에서 그를 발견했다.

그 후 우연한 기회에 그가 공직을 그만두고 변호사 개업을 하였는지, 그의 변호사 자격이 “등록취소”된 것을 알게 되었다. 변호사의 등록이 취소되었다는 것은 징역형을 선고받는 등과 같이 변호사 결격사유가 발생한 때 행해진다. 나중에 전해 듣기로는 그가 공직에 있을 때 발생한 돈 관계로 재판을 받아 형이 확정된 결과 등록이 취소되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변호사법은 징역형을 선고받은 자는 출소한 후 5년이 지나야 변호사 재등록과 개업도 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런데 5년이 지났을 때 우연한 기회에 그가 개업한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 젊은 변호사가 법률사무소에 취업을 하였는데, 4대 보험료도 연체하고 급여도 제대로 주지 않아서 퇴사하였다고 한 것을 들었다. 나는 어떤 변호사인데 월급을 안주더냐고 물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변호사 등록이 취소되었던 그 친구였다. 아마 다시 변호사 등록을 하고 개업을 한 후에 변호사를 고용했던 것 같았다. 혹시 사건수임이 어려워서 급여를 연체한 것은 아니냐고 물었더니, 전관 변호사 출신이라고 수임료를 몇 천만씩 받기도 하니까 돈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니라고 했다. 월급을 받지 못하여 억울해 하는 이야기를 나와 함께 듣고 있던 검사에게 급여를 지급하지 않고 있다는 변호사와 연수원 동기라는 인연을 말해주었다. 그리고 20여 년 전에 장롱 들어온다고 해서 돈을 보낸 적이 있다는 이야기도 해주었다. 그랬더니 그는 사기죄를 범한 것이라면서, 만약 그 사실이 드러났다면 현직 임관도 안 되었을 것이라고 했다.

아무튼 공직에서 퇴직한 후 변호사 개업했다가 등록이 취소되어 법률사무소 문을 닫았다가, 결격기간이 지나 다시 개업을 한 후 1년도 지나지 않아서, 소속 변호사의 급여를 지급하지 않은 일로 그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새삼 “너는 연수원 다닐 때 그런 애가 어떤 앤지 몰랐냐?" 그 말이 생각난다. 청탁금지법이 시행 중인 요즘 공직자가 장롱 값을 보내달라고 했다면, 사기죄가 성립되지 않더라도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청탁금지법은 공직자가 100만원을 초과한 금품을 받거나 요구·약속행위에 대하여 직무관련성 여부를 묻지 않고 처벌을 하기 때문이다.
 

2. 사랑의 증표로 벤츠 받은 검사

“벤츠 여검사 운명적 사랑은 ‘김영란법’ 낳았다.” 로이슈 2015. 3. 15.자 기사 제목이다. 검사가 금품을 받았음에도 뇌물죄로 처벌되지 않고 무죄판결이 선고되자, 이런 경우가 발생하지 않도록 청탁금지법이 생겼다는 것이다. 지난 2011년경 검사가 재직 중에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었다. 그 검사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알선수재)”으로 재판을 받게 되었다. 그 범죄사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검사였던 피고인이 내연관계에 있던 甲에게서 乙에 대한 고소사건이 잘 처리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취지의 청탁을 받았다. 그리고 甲에게서 신용카드와 외제승용차를 제공받아 사용함으로써 고소사건의 알선에 관하여 이익을 수수하였다는 것이다. 사건의 “알선”이란 법률사건의 당사자와 그 사건에 관하여 법률사무를 취급하는 상대방 사이에서 양자 간에 법률사건이나 법률사무에 관한 위임계약 등의 체결을 중개하거나 그 편의를 도모하는 행위를 말한다(대법원 2000도2253). 한 마디로 사건이 잘 처리되게 다리를 놔주었다는 것이다. 1심 재판을 하였던 부산지방법원은 유죄로 인정하여 징역 3년을 선고했다. 그 판결문을 보니, “피고인이 신용카드 및 외제승용차를 받아 사용·보관하던 중 청탁을 받고 알선행위까지 한 이상 청탁을 받은 시점부터는 그 사용으로 인한 이익이 알선행위와 대가관계에 있게 되고, 그 이익에 알선행위의 대가 외에 다른 성격이 포함되어 있더라도 이익 전부가 알선행위와 불가분적으로 결합되어 알선행위의 대가로서 성질을 가진다고 보아야 한다.”고 했다.

그 후 징역형을 선고받은 피고인은 부산고등법원에 항소를 하였다. 항소이유를 보면, 피고인은 연인관계에 있는 甲이 피고인에게 주어 보관·사용하게 한 신용카드나 벤츠 승용차 등은 “사랑의 증표”로 준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그런 금품은 ‘공무원의 직무에 속한 사항의 알선’에 관한 대가가 아니라는 등의 주장을 하였다. 부산고등법원은 피고인의 주장을 받아들여 무죄판결을 선고했다. 내연관계에 기하여 교부받은 신용카드와 벤츠 승용차를 이 사건 청탁 시점 이후에도 계속 사용하거나 보관·사용한 것과 위 청탁 사이에는 대가관계가 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 후 검찰이 상고하였지만, 대법원은 부산고등법원의 판단을 정당하다고 인정하여 결국 그 검사는 무죄로 확정되었다(대법원2013도363). 이 판결이 나자 현직 검사가 고가의 금품을 받았는데도 무죄라는 게 말이 되냐며 비난이 컸다. 그래서 국민들의 입장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법의 흠결을 보완하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벤츠검사 사건이 청탁금지법이 시행된 후에 발생하였다면, 받은 금품이 검사의 직무와 관련이 있는지 여부를 묻지 않고 유죄판결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3. 돈 봉투 만찬사건으로 무죄판결 받은 검사장

일반적으로 공무원이 금품을 받으면 ‘뇌물 먹었다’고 한다. 보통 그렇게 생각하지만, 실제 재판에서 뇌물죄로 유죄판결이 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금품을 받은 공무원을 뇌물죄로 처벌하려면 까다로운 요건을 필요로 한다. 먼저, 공무원이 '직무와 관련'하여 금품을 받거나 요구 또는 약속해야 한다. 그리고 제공된 금품이 그 공무원의 직무와 '대가관계'가 있어야 한다. 직무처리에 대한 보답 차원과 같은 대가로 금품이 제공되어야 한다. 이 두 가지 요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벤츠검사 사건에서처럼 무죄판결이 나게 된다.

부패한 공직사회의 특징은 관리들이 돈의 유혹에 넘어가는 것이다. 황금 같은 돈을 아무 이유 없이 공무원에게 줄 사람이 있겠는가? 공무원은 탈나지 않을 깨끗한 돈으로 알고 받아도, 돈을 제공한 자는 훗날 발생할 수 있는 사고에 대비한 보험료로 여기고 준다. 과거 변호사 하던 시절에 뇌물사건의 피고인들은 한결같이 “공무원에게 돈을 주면 훗날 반드시 그 돈 값을 해낸다.”고 했다. 바로 그런 날을 대비해서 친분관계를 유지하고자 음식도 대접하고 돈으로 기름칠을 해놓는 것이다. 공직사회에 돈이 오가는 풍조는 나라를 부패시키고 돈을 주거나 받은 자들을 곤경에 처하게 만든다.

청탁금지법이 공직자의 부패를 없애고 청렴한 사회를 이루는데 기여하겠지만, 이 법이 모든 걸 해결할 수는 없다. 청탁금지법은 공직자가 받은 금품가액에 따라 형사처벌을 받거나 과태료를 부과하는 제재 규정을 두고 있다. 물론 금품을 받아도 되는 예외사유도 있다. 그러니 앞으로는 벤츠검사가 무죄판결을 받았던 것과 같은 일은 발생하기 쉽지 않다. 이 법은 공무원은 물론 사립학교와 학교법인 및 언론사 임직원까지 법 적용대상자로 포함시키고 있다. 형법이 뇌물죄의 주체를 공무원으로 정하고 있는 것과 차이가 난다. 최근 서울중앙지검장과 법무부 검찰국장의 돈 봉투 만찬사건 후 청탁금지법 위반으로 기소된 검사장이 1심과 항소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상급 공직자와 하급 공직자 사이에 주고받을 수 있는 금품과 관련된 법리가 아직 정립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청탁금지법은 더 깊이 연구되어야 하고, 일상 속에 뿌리내려야 한다. 스승의 날에 카네이션 줄 수 있느냐 여부만 문제 삼는 법이 아니라, 권력자들이 고액의 금품을 주고받는 것을 실효적으로 규율하는 법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