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적폐청산 보다 중요한 작폐중단
이호선 국민대 법대 교수/전국법과대학 교수회 회장
“시험 4일 동안 너무 힘들었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9급 공무원 외벌이시구, 고3인 남동생도 있어서 (이번에 떨어지면) 현실적으로 꿈을 버려야만 하는 게 맞는데 정말 괴로웠습니다. 법조인이 될 방법이 없다는 게 자꾸 눈물 나고...” 금년을 마지막으로 사라지는 사법시험 2차 시험에 합격한 한 여학생이 필자에게 보내온 이메일이다. 다행히도 이 학생은 시험기간 중의 압박감과 상실감을 보상받는 합격이라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그렇지만 자신의 주변에 이제는 더 이상 유일한 법조인 통로로 남아 있을 로스쿨에 갈 엄두를 못 내고 포기해야만 하는 사람들의 아픔도 토로하였다. “저보다 더 훌륭한 실력 가지신 분들임에도 나이나 생계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법조인의 꿈을 포기해야 하는 사람 때문에 참 안타깝습니다. 이분들도 충분히 용기를 잃지 않고 노력하면 공정하게 기회를 잡을 수 있는데 법학전문대학원이라는 벽이 참 높을 것 같습니다.”
이 정부에서 강원랜드를 비롯한 공기업 등의 채용 비리를 접하면서 채용 비리, 불공정 시정 및 제재 방안을 강구하고 책임을 엄정히 묻도록 하겠다고 한다. 출발에서의 공정은 건강한 사회를 위한 기본 전제이다. 그러나 정말 공기업, 공공기관, 대기업의 채용 공정성이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해결될까. 백 명이 넘게 몰려온 지원자들 중에서 전직 고위간부의 자제를 뽑아 놓고도 채용 과정에서 위법은 없었다고 하는 감사원의 후안무치가 대통령 엄포 한마디로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고양이 앞에 무방비로 방치된 생선을 비닐로 싸두었다 한들 무사할까. 로스쿨이라는 배타적 변호사 자격증 양성 기관을 투명성과 책임을 물을 아무런 사전, 사후적 제도적 장치도 갖추어 두지 않고 대학이라는 민간에 맡겨두고, 여기에서 배출된 인력들을 변호사 자격증 있다는 이유로 특채 형식으로 뽑고 심지어 7급 공무원까지 이들에게 점점 내주는 상황에서 한국 사회의 채용 불공정은 이미 제도적으로 보장되어 있는 셈이다.
자격증 소지만 묻고 여기에 블라인드 채용까지 더하면 완벽한 내 새끼, 자기 사람 뽑기가 가능하고, 기준이 맹목적(블라인드)이다 보니 심증적으로는 불공정이 확실한데, 법적으로는 사법구제도 불가능하게 되어 버렸다. 이러니 위법뿐만 아니라 타당성까지 들여다봐야 할 감사원의 수장은 위법은 아니라고 한마디 해 버리고 면피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그 피해는 로스쿨에 갈 수 없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로스쿨에 진학하여 소위 변호사가 된 사람들 사이에서도 커지고 있다. 로스쿨 도입 후 검사 임용에서 학부 학벌 편중 현상이 완화된 기미라고는 없다. 오히려 학부 서열화가 고착화되어 자기 실력으로 패자부활전을 한번 해보려고 해도 입구부터 막혀 있는 형국이다. 물론 속된 말로 사건을 물어오거나 사건을 해결할 지위에 있는 네트워크에 걸려있는 로스쿨 출신들은 학부에 관계없이 잘 나가기도 한다. 이를 들어 학벌 완화되었다고 강변하는 데는 할 말이 없다.
적폐청산이란 말이 유행이다. 쌓인 폐단은 깨끗이 도려내고 털어내야 한다. 그런데 적폐 중에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 부작용이 쌓이고 쌓여 감내하기 힘든 수준에 이른 것도 있고, 고의적으로 만들어 낸 것도 있을 것이다. 두말 할 나위없이 후자가 더 악질이다. 적폐(積幣)가 아니라 작폐(作弊)이기 때문이다. 작폐를 저지르면서 적폐를 청산하겠다면 위선도 이런 위선이 없다. 적어도 출발의 공정을 위한 제도부터 만들어야 한다. 그 구체적인 첫 걸음 중의 하나는 로스쿨과 같이 특권에 연결되기 쉬운 직종 양성의 배타성을 깨뜨리고, 공직임용에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적어도 판사와 검사는 로스쿨 출신 아닌 사람들에게도 열려야 하는 것이다. 국가가 중요한 채용 불공정을 제도화하면서 반칙과 특권 타파를 입에 올리는 것은 참 부끄러운 일이다. 작폐 중단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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