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법 기본서 '지존' 무너지나

2004-08-03     법률저널


김형배, 김준호 각축속 지원림 도전
고시촌, 김형배 교재 절대 우위


'기존 기본서의 수성이냐, 새 기본서들의 돌풍이냐.'

고시시장의 민법 기본서 지존(至尊) 자리를 둘러싼 경쟁이 점입가경이다.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김준호 교수의 '민법강의' 교재가 절대지존으로 군림해 왔다.

하지만 지난 여름을 기점으로 김형배 교수의 '민법학 강의' 돌풍이 거세게 일고 있는 가운데 최근 지원림 교수의 '민법강의' 도전 또한 만만치 않다. 그동안 김준호 교수로 대변되던 기존의 최고 자리에 김형배 교수가 오르면서 민법 기본서 시장에 각축전이 벌어지고 있다.

수험생 박모(31)씨. 신림동 고시촌에서 5년째 사법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박씨는 민법 기본서를 3권을 가지고 있다. 고시공부 초기에 열렬한 김준호 교수의 '민법강의'를 열독했던 박씨는 다른 기본서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박씨는 "다른 고시를 준비하려던 후배들에게도 김준호 교수님의 책으로 반드시 공부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었다.

이런 박씨가 지난해 말에 '외도'를 시작했다. 두 차례 1차 합격의 경험에다 공부에도 구력이 붙으면서 김형배 교수의 '민법학 강의'를 탐독하기 시작한 것. 박씨는 "초기에 나온 김준호 교수의 민법은 쉽게 체계적으로 정리가 잘 된 좋은 책이었다"면서도 "이젠 김형배 교수의 교재를 보면 좀 실력이 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최근에는 "김형배 교수의 책에다 민법에 다시 매진하기 위해 지원림 교수의 책으로 바꿨다"고 털어놨다.


민법 입문자에 김준호 교재 인기

최근 사법시험, 변리사, 감평사 등 민법 시장에서 수년간 절대강자로 군림하던 김준호 '민법강의'의 1위 자리가 심상치 않다. 민법강의의 아성을 위협하는 교재는 김형배 '민법학 강의'.

민법 기본서 시장 전체를 두고 보면 두 교재가 엇비슷하게 점유하고 있지만 사법시험 특히, 신림동 고시촌에서는 '민법강의' 판매가 급격히 줄어든 반면 '민법학 강의'는 껑충껑충 뛰어 민법강의를 제치고 1위로 부상했다.

현재 민법강의는 사법시험 초보자나 변리사, 감평사 등의 수험생들에게는 인기가 여전해 1위 자리를 수성(守成)하고 있다. 

본지가 확인한 결과, 신림동 고시촌 일부 서점이나 교보문고, 영풍문고 등 대형서점에서는 김준호 교수의 교재가 판매량에서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시촌 이외에서 '민법강의'가 더욱 많이 나간다는 것은 사법시험을 제외한 기타 시험에서 인기가 높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고시촌의 한 서점 주인은 "사시 입문자뿐 아니라 변리사 등 기타 고시 수험생들에서는 여전히 김준호 책이 인기가 높아 가장 많이 팔린다"고 말했다.


고시촌, 김형배 교재 완전 평정

사법시험 수험생들이 몰려있는 고시촌에서는 상황이 정반대다. 김형배 교수의 '민법학 강의'가 고시촌 대부분 서점에서 매장의 제일 좋은 자리를 차지했다. 한 서점 운영자는 "김형배 책이 작년 여름부터 좀 팔리기 시작하더니 올해 들어서는 민법 기본서 시장을 완전히 평정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법학 강의' 주독자층은 사법시험 1차시험 구력이 있는 수험생들이나 2차시험 수험생들. 민법학 강의가 다소 어려운
편이라는 평이지만 사법시험 수험생들에게는 필수라는 얘기다. 

본지가 조사한 고시촌 10개 주요 서점 가운데 김형배 책이 8개 서점에서 판매량 1위를 차지해 '민법지존'의 자리를 확고히 했다.  

수험생 김모(29)씨는 "1, 2차 연계를 생각하면 김형배 책을 봐야 하는 것이 대세인 것 같다"며 "대부분 학원의 강사들도 김형배 책을 기본서로 채택하기 때문에 쏠림 현상이 더욱 심하다"고 말했다.

고시학원의 8월 시간표를 보면 '민법학 강의'의 인기를 방증하고 있다. 극히 일부 강사를 제외하고는 권순환, 오양균, 모갑종, 강민 등 대부분의 강사들이 1차나 2차에서 김형배 교재를 기본서로 채택하고 있다.

'민법강의'의 아성을 뒤엎은 '민법학 강의'는 어떤 교재일까. 1999년 7월 초판이 출간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독자들의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하지만 사법시험 주관이 행정자치부에서 법무부로 이관되면서 민법문제의 난이도 높아지고 이같은 출제방향에 대해서 일반적인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터에 2003년 4월에 출간된 제3판이 독자들로부터 집중적으로 관심을  받았다.

이같이 수험생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주된 원인은 방대한 민법의 전분야를 균형 잡힌 시각에서 일관된 논리로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는 게 수험생들의 평이다. 수험생 이모(27)씨는 "민법전 각편의 복잡한 내용을 유기적으로 연관해 종합적이고도 체계적인 이해가 되도록 책이 짜여져 있어 민법 공부를 보다 효과적으로 익힐 수 있도록 배려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지원림 '민법강의' 새롭게 부상

김준호, 김형배 '쌍두 마차' 체제에 지원림 교수의 '민법강의'가 도전장을 냈다. 지원림 민법강의는 송덕수 교수의 '민법강의(상)', 양창수 교수의 '민법입문', 이영준 변호사의 '한국민법론' 등 최근 수험생들로부터 관심을 받기 시작한 교재들 가운데 단연 선두다.

지원림 민법강의는 민법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최소한의 내용을 압축한 것으로 최근 단권화된 수험서 내지 요약서로 공부하는 수험경향과 맞물렸기 때문에 수험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경쟁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수험생 최모(25)씨는 "주위에서 지원림 교재가 잘 되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은데다 수강하려든 강사가 기본서로 선택하는 바람에 이번 기회에 교재를 바꾸기로 했다"며 "내년쯤이면 기존 민법 기본서의 아성을 위협할 것"이라고 내다봤
다. 

서점 한 관계자는 "기존의 책들에 식상했던 수험생들에게 새로운 책들의 등장은 신선한 매력이 되고 있다"면서 "출판사나 저자들도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게 기획된 책을 내 수험생들에게 좀더 어필을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민법 신판이나 개정판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지존 자리를 둘러싼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어떤 책이 독자인 수험생들의 욕구를 지속적으로 충족시킬 수 있느냐에 따라 시장의 흐름에서 주도권을 쥐게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