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공감 염형국 변호사 “약자 곁에 서는 것이 공익 변호”

2016-11-17     김주미 기자

13년차 베테랑 된 대한민국 공익변호사 1호
“공익변호사에 대한 인식·처우 개선 필요해”
“청년들, 정해진 길 이탈할 때 행복 찾을 것”

[법률저널=김주미 기자] 돈 되는 일인지를 따져야 하는 영리활동의 그림 자체가 그려지지 않는다는 그였다. 공익변호만을 전담으로 하는 ‘대한민국 공익 변호사 1호’ 염형국 변호사 이야기다.

올해로 공익변호 13년차. 그 오랜 시간동안 언제나 그의 자리는 그늘진 곳의 소외된 이웃들 곁이었다.

수줍은 듯 은은한 미소로 한결같이, 그는 언제나 사회가 주목하지 않고 오히려 외면하며 무시하는 사람들 옆에 서 왔던 것이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요. 돈 잘 버는 변호사가 아니라, 약자 곁에 서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그런 변호사로 있을 겁니다. 그게 저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이 추구하는 근본 가치이구요”
 

비장하기보단, 오히려 소박한 생각에서 시작한 공익변호사의 길

그가 사법연수원 1년차인 때 당시 변호사이던 박원순 시장의 특강을 들었다. 공익변호를 전담하는 전업 공익변호사가 당시까지는 없었는데, “공익단체들의 활동에는 법률지원이 늘 필요하므로 공익변호사는 소위 ‘블루오션’이다. 용기있게 뛰어드는 사람들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 박원순 시장의 주장이었다.

염형국 변호사의 가슴에 깊이 새겨진 그 날의 특강은 그가 연수원 2년차 때 본격적인 진로 고민을 하는 시점에 다시 피어올랐다.

“변호사로서 보람 있게 사회 기여를 할 수 있다”는 박원순 시장의 말에서, 돈이나 명예보다 사회적 기여가 되는 삶을 살고자 했던 그의 갈 길을 어렴풋이 발견한 걸까.

“저는 소심한 성격이었어요. 자문을 구해볼까 하는 심정으로 박원순 시장님께 이메일을 보냈죠. 이런 고민들을 하고 있다고 썼는데, 그 자체는 용기를 많이 낸거였어요(웃음)”

공익변호사 염형국은 그렇게 시작됐다. 이메일을 받은 박원순 당시 변호사는 바로 염형국 변호사를 부르더니 자신이 몸담고 있는 아름다운 재단에서 일할 것을 권유한 것.

염변호사는 “공익변호사로서의 첫 걸음 자체는 그리 큰 용기를 필요로 한 것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아름다운 재단이라는 울타리 안이었으니까요. 당시 시민단체나 활동가들의 삶은 정말 열악했어요. ‘변호사 치고 적은 수입을 얻는다’ 그렇게 볼 수는 있겠지만 ‘내가 정말 비장한 결심을 하고 공익변호사로서의 삶을 시작했다’고 말한다면 그건 포장일 거예요”

염변호사는 대뜸 참여연대에 상근하는 김선휴 변호사를 언급했다. “며칠 전 최순실 사태 관련한 정권 규탄 시위를 교통방해라는 이유로 경찰이 막았잖아요. 그런데 김선휴 변호사가 경찰의 금지통고에 대한 정지처분을 신청해서 집회를 가능하게 한 일이 있죠. 그 소식을 접하니 매우 기특하고 자랑스러운 마음이 들더군요. 공익변호사들의 일이 그런 거예요. 집회·시위는 약자의 권리잖아요. 그들의 권리 행사를 지켜주고 법적으로 도와주는 일이 우리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일이면서 꼭 해야 하는 역할이죠”

공익변호사가 되면서 그가 애당초 가진 생각도 딱 그와 같았다. 약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이 목소리를 내게 도와주고, 그들의 권익을 지켜주는 일. 일찌감치 그것이 자신이 평생 할 일이라고 여겼다는 것이다.

한 날 전원일치 위헌 판결 두 건을 받다

“그런 순간이 이전에도 없었고, 아마 앞으로도 없겠죠. 정말 기뻤어요” 활짝 웃느라 반달이 된 그의 눈이었지만 반짝이는 눈빛은 어디 가지 않았다.

9월 29일 헌법재판소는 전원일치로 정신보건법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구) 집시법 조항에 위헌 결정을 내렸다. 두 사건 모두 그가 맡은 사건이었다.

“강제입원이 쉽게 이루어지는 부분에 대해서는 그간 헌법소원이 7번이나 있었어요. 직접성 요건 결여로 다 각하가 내려졌지만 그만큼 악용이 많았던 사안이고 저도 공감 초기부터 관심을 가졌었죠.”

이번 헌법불합치 결정은 권오용 변호사가 진행해 오던 인신구제청구 사건 도중, 해당 법조항에 대해 제기한 위헌법률심판 제청이 받아들여져 이루어진 것이다.

경미한 우울증에 불과한 어머니를 돈 문제가 얽혀 있던 딸이 이 조항에 기해 강제입원을 시킨 사안이었다.

염변호사는 이 사안을 권오용 변호사와 함께 다루다가 공개변론 때 변호사로 선임돼 헌법불합치 결정을 이끌어냈다.

일찍부터 장애인들의 시설 문제를 쭉 다뤄왔던 그는 정신보건법 제24조의 악용과 남용으로 부당하게 시설에 감금되는 사람들의 경우를 많이 접했다며 “이번 판결에 기해 최소한의 악용방지 장치를 마련한 것에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구)집시법 조항의 경우, 유신헌법 당시 긴급조치로 인해 유죄판결 받았던 사람들의 재심청구 사례를 몇 건 맡아 진행하던 중 일부 사례가 해당 조항에 기한 경우여서 하게 됐다고 한다.

“민주적 기본질서에 반하는 집회를 금지하겠다는 그 조항은 집회와 시위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겠다는 뜻에 다름아니죠”라며 다소 격앙된 반응을 보인 그는 “집회 및 시위의 분명한 의미 정립을 위해서라도 명백히 위헌결정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위헌심판청구까지 나아가게 됐다”고 전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 프로보노지원센터 센터장 맡아

서울지방변호사회(회장 김한규 변호사)는 지난 4월 공익활동을 전문으로 하는 프로보노 지원센터를 열고 염형국 변호사에게 센터장의 자리를 맡겼다.

“그 동안 뜻있는 변호사들이 공익을 위해 많은 활동들을 해 왔지만 변호사회 차원에서 센터를 만들어 네트워크 구축의 플랫폼을 만든 것은 처음 있는 일이죠. 김한규 회장이 참 대단한 일 하셨습니다”라며 타인부터 추켜세우는 그였다.
 

서울변회의 프로보노 지원센터는 공익활동을 지원하는 변호사와 공익단체를 연결하고 공익변호사를 양성·지원하며 이로써 변호사의 공익활동이 일상화되도록 하려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최근 대형로펌들의 공익활동이 과거에 비하면 상당히 활성화되어 가는 추세에 있어요. 로펌마다 공익법인을 설립하고 공익 전담변호사를 두어 공익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는데요. 하지만 이렇게 자체적으로 활동이 가능한 것은 대형로펌들 이야기고, 중소형 로펌이나 개인변호사들은 현실적으로 그런 활동들이 어렵습니다. 마땅한 네트워크도 없고 방법도 모르죠. 프로보노 지원센터의 첫째 미션은 그런 분들에게 공익 활동을 중개하고 지원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영역별 세미나를 개최해 공익 활동에 대한 이해를 돕고 리더십 프로그램 등을 통해 공감대 형성에도 주력하고 있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77명의 공익변호사들의 연구비 지원과 해외연수 지원도 하고 있으며 매해 새로이 유입되는 변호사들에게 재정 지원도 하고 있다.

염변호사에 따르면, 시간을 내 직접 발로 뛰는 봉사활동에 대한 변호사들의 열기도 상당히 뜨겁다고 한다. 봉사활동 공고를 내면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신청이 마감된다는 것.

염변호사는 한편으로 같은 영역에 뛰어든 후배 변호사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다고 밝혔다. “저희 공감이 처음 활동을 시작할 때는 아름다운 재단이라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었던 데 반해 지금 후배들 중에는 아무런 배경과 지원 없이 열악한 환경에서 활동을 시작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미안한 마음이 있죠”

그 때문인지 더 공익변호 활동에 대한 사회 공감대 형성에 주력하게 되고, 이들의 처우와 인식 개선을 위해 힘쓰게 된다고.

다만 공감 초기 활동 시절에는 선배변호사나 유사 단체도 없고 사건 해결이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처음 부딪히는 경우도 많았던 데 비해, 지금은 새내기 공익 변호사들을 법률적으로 도와주고 이끌어 줄 조력자들이 충분히 형성돼 있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공익변호사 단체로는 현재 공감 뿐 아니라 희망법, 어필 등 대중에 충분히 알려진 인지도 있는 단체들이 여럿 있다. 이들은 후배 변호사들을 위해 법적으로든 그 외의 문제로든 기꺼이, 또 수시로 자문을 해 주고 있다.

“지금은 공익변호로 다룰 수 있는 거의 모든 영역에 사례와 해결례들이 이미 축적돼 있어 후배들이 사건을 해나가는 데 있어 그리 막막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게 염변호사의 생각이다. 그는 지속가능한 공익변호활동에 대해 누구보다 많은 구상과 노력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청년들에게...“이탈한 자가 문득”

“제가 좋아하는 시인데요, 이 부분을 인용해 주세요”라며 스마트폰을 기자 쪽으로 돌려 보여준다.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 그 똥, 짧지만, /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김중식 시인의 ‘이탈한 자가 문득’이라는 시였다.

오래 전 박원순 시장의 말 한마디에 자신의 길 뿐 아니라 대한민국 공익변호사라는 길까지 개척한 지금의 그가 있는 것처럼, 염변호사의 한 마디 조언에 어떤 새로운 길을 낼 청년이 또 나와줄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서 요청한 ‘청년들에게 주는 조언’에 대하여 그는 “청년 세대가 처한 상황은 기성세대들이 쉽게 이해하거나 공감하기 어려운, 우울한 상황이라는 것은 분명해요. 무언가 훈계조로 이야기할 수는 없는 부분이죠”라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그러나 우리 청년들에게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것이 물론 우리 부모세대들 때문인데요. 맹목적으로 안전한 길만을 좇으려는 청년들의 인식은 아쉽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는 앞서 소개한 시의 의미를 풀어주었다. “기존의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으면 별똥별이 되지 않아요. 물론 그 자리에 박혀 있는 별들도 아름답죠. 그러나 삶으로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자신이 간 길이 흔적으로 남는, 그런 인생은 정말 의미 있지 않을까요? 이 시는 그런 인생이 궤도를 이탈할 때, 정해진 길로 가기를 포기할 때 만들어진다고 이야기하죠”

한번쯤은 정해진 길 이외의 길을 청년들이 스스로 생각해 봤으면 한다는 것이다. 청년들의 삶이 ‘공무원, 법조인’ 이렇게 짧은 단어 안에 다 담기기보단, 각자의 꿈과 가능성이 별똥별의 긴 꼬리처럼 그들의 삶 뒤에 따라붙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보였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해지기를 원해요. 하지만 막연히 ‘무엇이 되면 행복할 것이다’라고 생각하면 안 될 것 같아요. 남들 다 가는 길에서 깨달음이나 자유를 찾기는 어렵죠. 자신만이 갖고 있는 꿈과 가능성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을 때, 행복은 거기서 찾아지는 거라고 봐요”

인터뷰 김주미 기자, 사진 강미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