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시정원 500명이 적절하다고?
서울지방변호사회의 한 책임연구원이 최근 사법시험 정원을 500명 선으로 줄여야 한다는 요지의 논문을 내놔 논란이 일고 있다. 그는 '적정 변호사 수에 관한 연구' 제하의 논문에서 "이제는 증원이 아니라 변호사 수의 유지 또는 감축을 논의해야 할 때"라며 사법시험 합격자 수 감축 필요성을 거론했다. 논문에서 그는 "평균 수임료를 250만원으로 잡았을 때 변호사 한 명이 사무실을 유지하며 월 500만원 정도의 수입을 올리려면 한달에 6건을 수임해야 한다"며 "사건별 변호인 선임률 등을 감안할 때 산출되는 적정 법조인 수 1만4725명(2010년 기준)은 98년부터 사시 정원을 700명으로 맞췄을 때 가능한 수치"라고 밝혔다.
그는 또 "그러나 700명은 '이상적 수임률'을 적용했을 때의 수치이며 '현실적 수임률'을 적용하면 사시정원은 매년 500명이 적절하다"며 사실상 현재 1천명선인 사시 정원 축소를 주장했다. 또 "96년 이후 변호사가 대량 배출되면서 변호사의 사회적·경제적 지위는 급격히 저하되고 있으나, 양질의 법률서비스가 저렴한 가격으로 국민에게 제공되고 있다는 찬사는 들리지 않고 있다"며 "변호사 수의 대폭 증가로 법률 서비스의 질은 오히려 떨어지고, '백수 변호사'가 생기고 있는 실정" 이라고 덧붙였다.
아무리 변호사단체의 논문이라지만 노골적인 집단이기주의 발상의 산물에 다름 아니다라는 생각에 우선 어이가 없다. 문제의 논문이 나온 배경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올해 대규모 과락 사태로 선발예정인원도 채우지 못한 터에 아예 선발인원을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줄여야 한다는 변호사 업계의 주장은 예사롭게만 들리지 않는다. 법조인 대폭 증원이 세계적인 추세임에도 우리는 아직까지 증원이 전제된 법률전문대학원(로스쿨) 도입 논의 등이 주춤하고 있는 마당에 하물며 시행 초기인 1000명 사시 정원 축소론이 제기된 것은 한 마디로 성급하다. 밥그릇 챙기기라는 비판을 받고도 남을 일이다. 그저 독점적 고수익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려는 과거 회귀 욕구의 소리로만 들릴 뿐이다. 차라리 변호사 숫자가 너무 많아져서 먹고 살기가 힘들어졌으니 줄여달라고 하는 것이 덜 민망할 것 같다.
사시 정원을 늘린 것은 변호사 업계의 이해관계를 넘어 법률시장의 개방에 따른 경쟁 확보와 국민들에게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싼 값에 공급하자는 뜻에서 이뤄진 사회적 합의다. 하지만 지금 '숫자가 너무 늘어났다'는 변호사들의 볼멘소리가 높지만 정작 소송수임료는 크게 낮아지지 않았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변호사 비용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높다는 통계치도 있다. 미국은 우리의 3분의 1 수준이고 독일은 10분의 1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국민소득을 감안하면 우리가 수십배나 높다. 이 마당에 전체 변호사 수를 줄여야 사무실을 유지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편다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통 모른다는 얘기다.
변호사업계는 사시 정원 축소에 집착하기보다 각자의 경쟁력을 제고하고, 정부 공공기관 기업 등 각 분야의 전문가로 활로를 개척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변호사는 늘었는데 비용은 줄지 않는 왜곡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일부 변호사에 사건이 집중되는 탓이다. 여전한 전관예우 폐습을 없애는 등 낡은 제도와 관행을 바꾸는 것이 더 시급한 과제다. 지금 추세라면 변호사 '백수'를 볼 날도 머지 않을 것 같지만 변호사 수 적정선은 변호사들의 계산기에 의해 결정될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이번 논문의 주장은 차라리 '밥그릇 지키기' 위한 주장으로 여기고 싶은 만큼 상식 이하이고 수준 이하의 언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