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석차판결 정보공개 확대 계기로
급기야 행정법원이 현재 비공개로 되어 있는 대입수능의 총점 기준 누가성적분포표와 개인별 석차 등을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지금의 성적 처리 방식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지적 받아온 터에다 입시철만 되면 애써 공부해온 수험생들은 전국 석차나 수준을 알지 못해 우왕좌왕해야 했다. 따라서 사설 입시 기관이 상업적으로 만든 지원 가능대학 배치표가 기준이 되는 촌극을 빚어온 게 사실이다.
수능 석차 비공개 조치는 교육당국의 행정목표에 따라 대입전형 방식을 다양화하고 대학 서열화를 막는다는 취지로 2002학년도 입시부터 도입된 것이다. 수험생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 조치는 입시경쟁 완화라는 명분에서 어느 정도 설득력을 지녔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조치 이후 대학입시에서 눈치작전이 더욱 치열해졌고 교육당국의 의도대로 석차 자료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부정확한 정보가 더욱 수험생에게 혼란을 주는 엉뚱한 결과를 빚고 만 것이다. 수능 응시자들이 개인별 석차를 몰라 겪고 있는 피해가 매우 큰 데 비해 대학 서열화 방지 등 기대했던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대학들의 인적·물적 구성 및 조직 등에 있어서 우열이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석차 비공개 조치가 입학 전형 방식의 폐단을 줄이고 대학 서열화를 방지하는 효과를 충분히 발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이번 수능석차 공개 판결은 비단 수능에 국한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법시험을 비롯한 국가고시에서도 수험생들의 정보공개의 욕구가 날로 더해가고 있는 실정이지만 시험당국은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수험생들은 △가채점 결과 △우수답안 △과목별 점수현황 △선택과목 현황 등 시험과 관련된 각종 정보의 공개를 요구하고 있다. 이같은 정보의 공개 여부는 수험생 입장에서 보면 인생의 진로를 결정지을 만큼 중요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도 시험당국은 이를 공개할 경우 평가기준과 평가결과 등을 둘러싼 시시비비가 많아 시험업무의 공정한 수행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고, 나아가 시험의 존립자체를 위태롭게 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공개를 거부해왔다.
그러나 최근 변리사시험을 주관하고 있는 특허청이 그동안 비공개로 여겨져 왔던 다양한 정보를 적시(適時)에 최적의 방법으로 공개함으로써 수험생들로부터 큰 호평을 받고 있다는 점은 여타 국가고시나 자격시험을 관장하는 기관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우리는 특허청이 수요자 중심의 정보공개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려는 노력이 사법시험이나 다른 국가고시에도 변화의 새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한다. 시험당국이 제대로 수험생의 여론이나 현실을 감안하지 않은 채 중요 정보에 대한 비공개를 계속 고집한다면 행정편의주의라는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정보공개 여부를 판단하거나 공개절차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수요자의 입장보다 공급자의 입장을 먼저 고려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보고, 시험당국은 비공개를 전제하고 소극적으로 공개하기보다는 '공개원칙·극히 제한적 비공개' 라는 적극적 자세로 전환하여야 할 것이다. 수요자인 수험생들의 정보 요구를 목격하면서도 행정목표에만 매달릴 수만은 없지 않은가. 따라서 시험당국은 공정한 시험관리를 위해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든 정보를 생산 즉시, 공개하는 것이 행정의 질적 향상을 도모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수험생의 알권리 충족과 시험행정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지름길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