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리사시험 ‘응시자격’ 제한 완화될 듯
특허청 “응시자격 완화 등 정부안 곧 확정”
변리사시험을 이공계 대학 졸업자나 이공계 과목 중 일정 학점 이상을 이수한 사람만 볼 수 있게 하려던 방침이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인문계열 출신자들에게는 또 다른 ‘진입장벽’이 된다는 여론의 반발을 고려해 변리사법 개정안을 손질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특허청은 지난해 10월 각계 전문가들로 ‘변리사제도개선위원회’를 구성해 6개월간 논의를 거쳐 ‘변리사법 전부개정 시안’을 마련했다. 개정안 시안에서는 이공계 대학 졸업자 또는 이공계 과목 일정학점 이상 이수자로 변리사시험 응시자격을 제한하도록 했다.
이공계로 응시자격을 제한하려고 한 것은 최근 변리사시험 합격자의 대부분이 이공계 출신이라는 점을 들었다. 또한 변리사는 기술전문가라는 인식이 크고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상표, 디자인, 저작권 등의 업무 영역으로 다수 진출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 향후 변리사의 특허소송에의 참여가능성 등을 고려할 때 응시자격을 이공계 출신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것.
우리나라와 일본은 전공에 따른 응시자격에 제한이 없지만 선진 외국 대다수는 이공계 졸업자로 응시자격을 제한하고 있고 또 현재 사법시험이 법학 35학점, 공인회계사 시험이 회계 과목 24학점 이수제를 시행하고 있다는 점도 하나의 이유로 꼽았다.
하지만 개정 시안에 대한 공청회에서 이공계 응시자격에 대한 반발이 예상보다 거셌다. 토론자로 나선 성숙경 (주)KT 상무는 “특허가 지식재산권의 많은 비중을 갖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식재산권이 특허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며 “디자인 또는 상표에 관해 수행되는 업무에서 왜 이공계 과목을 이수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이공계 응시자격에 반대했다.
그는 또 “변리사의 업무가 상표, 디자인 등의 업무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이공계 전공으로 응시조건으로 한정하는 것은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오규환 대한변리사회 기회이사 역시 “변리사시험 과목에 이공계 과목을 포함시켜 응시자가 이공계 분야에 지식이 있음을 객관적으로 보여 주게 하면 족할 것”이라며 “수험 자격을 이공계 과목 이수자로 한정할 필요는 없다”고 반대했다.
김원준 교수(전남대 로스쿨)도 “이공계 출신이 변리사 업무 중 특허와 실용신안 분야에 유리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오히려 상표와 디자인 분야는 법학, 경제학, 인문학을 전공한 이들에게 더 유리할 수 있다”며 응시자격 제한을 비판했다. 그는 특히 “사법시험과 공인회계사법의 학점이수제는 응시자의 특별한 전공에 차별을 두고 제한하는 것은 아니라”라고 덧붙였다.
이후동 변호사(법무법인 태평양) 또한 헌법상 권리침해를 우려하며 반대했다. 그는 “이공계 출신자에 한정시킬 논리적 정당성을 찾을 수 없을뿐더러 헌법상 보장된 평등권, 직업선택의 자유에 대한 본질적 침해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또 “상표나 디자인을 전담하는 변리사의 경우 반드시 이공계 지식을 갖추도록 강제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며 “특정 기술에 대한 이해가 변리사 업무에 필수적이라면 변리사들의 업무 분야는 자신의 대학 전공 분야에 한정되어야 하고 전문성 제고는 변리사 스스로의 노력에 중요하지 특정 교육과정의 이수 강제로 달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대한변협도 “변리사 업무가 특허 분야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고 상표, 디자인, 저작권법 등 비기술적 분야가 포함되어 있어 오히려 법학, 경제학, 인문학 전공자들의 전문성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이공계출신자에 한정하여 응시 자격을 주는 것은 타당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공계 응시자격 제한에 대해 비판이 쏟아지자 특허청은 이공계 응시자격 제한을 완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허청은 논란이 되고 있는 응시자격을 완화하는 것 뿐 아니라 16개에 달하는 선택과목 축소 및 난이도 조정, 일정 자격을 갖춘 경력자에 대해 선택과목을 면제해 주는 방안, 대한변리사회의 자격인증을 통한 전문변리사제도 등에 대해 재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변호사에게 자동 부여하던 변리사 자격 폐지에 대해서는 강경하다. 기득권은 인정하지만 전문성 강화를 위해 신규 변리사 개업을 원하는 변호사가 일정 자격을 갖추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또 심사·심판 10년 경력의 특허공무원에게 변리사 자격을 부여하는 것에 대해서도 시안대로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특허청 관계자는 “관계부처 등의 의견을 수렴한 뒤 8월 중 정부안을 확정하고 입법예고를 거쳐 내년쯤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차지훈 기자 desk@le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