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락제도, 합리적 연관성 있어야

2003-07-09     이상연

 

사법시험과 행정·지방고시(행정직) 2차시험이 각각 지난달 26일, 지난 7일에 끝났다. 올해 2차시험은 무더위가 빗겨간 가운데 치러져 큰 불편 없이 비교적 차분하게 진행됐다. 사법시험은 가채점 및 채점기준표 작성이 완료되었고 곧 채점에 들어갈 예정인 것으로 알려져 수험생들의 눈과 귀는 오로지 채점위원에 쏠려있다. 2차 응시자의 증가로 인한 과중한 채점 부담은 자칫 채점 소홀로 이어져 과연 공정한 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 우려하는 수험생들이 많다는 점, 채점과정에나 완료 후에도 수험생들 사이에선 채점에 관한 잡음이 끊이지 않아 채점위원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따라서 채점위원들은 정교함과 세밀함은 물론 공정성에서 한치의 어긋남이 없도록 하는 일이 채점과정의 요체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현재 2차시험에서 수험생들 사이에 논의의 중심은 과락제도다. 특히 사법시험의 경우 과락제도가 합리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는데 수험생들은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매년 불거지는 문제이지만 해결의 실마리를 잡지 못해 수험생들의 불만이 높아만 가고 있는 실정이다. 해마다 특정 과목에서 과락자가 속출하고 있어 2차 시험을 치른 다음부터 발표 때까지 과락에 대한 공포로 가슴 졸여야 하는 것이 수험생들이다. 올해도 예외없이 민법과 형사소송법에서 이런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는 입소문이 무성하다. 이처럼 합격자 발표후 채점이나 과락과 관련된 갖가지 루머들이 봇물을 이루는 등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은 채점과 관련된 정확한 정보가 없고 과락기준에 비해 합격선이 지나치게 낮다는 점이다.


과락제도는 법무부의 설명대로 법령개정 사항이고, 법률분야에 고른 학식과 소양을 갖춘 사람을 선발하기 위한 것이므로 과락제도가 시험의 본질에 위배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합리성을 결여하지 않는 한 시행자의 고유 권한이라는 법원의 판결도 있어 과락제도의 폐지나 개선에는 현실적인 어려움들이 도사리고 있다. 우리도 이미 본란을 통해 과락제도가 합격선과 합리적 연관성을 전제로 그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는 게 우리의 일관된 주장이었다. 그러나 현재의 합격선이 50점선에서 오르내리는 현실에서 40점의 과락기준은 합리적인 연관성이 결여된 너무나 치명적인 수단으로 누구도 수긍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수험생들도 과락제도 그 자체에 이의를 두려는 것이 아니라 합격자를 결정하는데 현재의 합격선이 과락기준과 얼마나 합리적 연관성을 갖고 있느냐는 반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공정한 기준으로 채점을 한다 한들 뒷말과 불만이 뒤따를 것이고 수험생들 사이에 '과락 공포증' '면과락이면 합격' '포탄 피하는 것이 실력'이라는 자조적(自嘲的)인 말들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낮은 합격선에 높은 과락기준이 오히려 고른 학식을 갖춘 사람을 선발하려는 과락제도의 취지를 무색케 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전과목 평균점이 합격선을 훨씬 상회하는 경우에 특히 문제된다. 가령, 전체 평균점이 합격선을 크게 웃돌았지만 단 한 과목에서 과락기준에 극소수점이 모자라 불합격한다면 과연 면과락으로 간신히 합격한 사람보다 우수하지 못하다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실제로 이런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기에 제도적인 개선이 시급한 실정이다.


과락제도라는 장치가 꼭 필요하고 현재 과락 기준의 하향조정이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면 합격선을 크게 올려 과락자를 최소화하여 수험생들의 불만을 해소하고 공감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채점위원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각별히 요구된다. 법무부도 채점위원의 고유권한 운운할 것이 아니라 이같은 논란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시험을 주관하는 기관으로서 적극 노력해 줄 것을 거듭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