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빈곤율과 몽둥이

2011-09-15     법률저널

 

오시영 숭실대 법대학장/변호사/시인

 

미 인구통계국이 지난 13일 발표한 빈곤율 보고서는 충격적이다. 빈곤율이라 함은 최저생계비에 미치지 못하는 저소득층의 비율을 뜻하는데, 그 비율이 무려 15.1%에 이른다는 것이다.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소득층이 인구 100명 중 15명에 이른다니,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는 부자나라, 세계최강국 미국의 어두운 뒷면을 보는 것 같아 충격적이다. 세계에서 가장 부자나라였던 미국이 자기 집안의 살림살이 문제를 풀지 못하고 허덕이고 있으니, 세계경제가 침체국면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지 않을까 싶다. 마치 거대한 공룡이 아사직전에 놓여 있는 듯한 형국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때 미국은 세계화만이 살 길이라고 외치며 WTO체제를 앞장서 주도하여 왔다. 미국은 대외경쟁력이 가장 뛰어난 나라라고 스스로 평가하고 자만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세계 다른 나라들과 맞붙어보니, 무기관련 산업을 제외하고는 이제 별로 세계 다른 나라와 싸워 이길 만한 산업이 없다는 뼈저린 현실 앞에 직면하게 되었고, 그러한 경쟁력 약화는 빈곤율 증가라는 최악의 결과로 나타나고 말았다. 마이클 무어 감독의 “자본주의 비판” 다큐멘터리 영화를 볼라치면, 추악한 미국 정치인들의 추잡스러운 뒷모습을 잘 알 수 있다. 그 다큐멘터리 영화는, 겉으로는 국민의 이름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국민을 거의 안중에도 두지 않는 정책을 펴며, 일부 금융자본가와 정치가들의 이권만 불려주고 있는 자본주의의 폐해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자본주의가 견실하려면 중산층이 안정되어야 한다. 중산층이 안정되어 있다는 것은 “국민들 사이에 소득의 적정한 분배”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반면에 빈곤율이 급증하고 있는 사회적 현상은 소득의 적절한 재분배기능을 사회 경제 메커니즘이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하고, 이는 특정집단에 대한 소득의 과부화현상이 발생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어느 정도 공평하게 분배되어야 할 소득을 문어의 빨대처럼 특정집단이 과도하게 빨아들이는 바람에 소득재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가난한 자들은 더욱 가난해지는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미국의 현상이 대한민국에서도 점차 심화되고 있다. 미국은 그나마 사회보장제도가 우리보다 잘 되어 있고, 정책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공정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그러한 불평등구조가 심화되고 있는데, 우리처럼 그러한 안전망구조가 취약한 나라는 두 말할 필요도 없이 불균형화 속도가 빨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번 추석 연휴에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이명박 정권의 공과에 대한 이야기와 안철수 서울대교수의 예상치 못한 정치적 등장에 대한 이야기가 단연 화제일 수밖에 없었다. 만난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이야기는 이명박 정권의 경제정책이 엉망진창이라는 것이다. 대기업에 나름대로 고위직으로 근무하고 있는 이도 있었고, 삼성에 근무하다 나온 이도 있었으니, 그들의 평가는 어느 정도 나름대로 공정성과 객관성 있는, 체험된 이야기일 것인데, 경제 실정에 대한 성토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면서 안철수 교수의 돌풍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로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모아졌다. 그들이 하는 말을 가만히 듣자니 “한나라당 이명박 정권의 불공정성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는 사회적 불신과 공정한 사회를 향한 변화의 욕구”와 “민주당의 수권능력 부재와 구태 인물들에 대한 불신”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러니 제3의 대안을 갈망하게 되고, 그 중심에 안철수 교수의 부상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년 총선과 대선은 또 다수 보수와 진보의 가치에 뒤범벅되어 이전투구 싸움판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중심에 지금까지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네 개 종편방송의 괴물 같은 위력”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조선, 동안, 중앙, 매일경제로 상징되는 네 개의 종합방송채널이 내년에 방송을 신규 시작하게 되는데, 그들은 티비 방송을 통해 그동안 그들이 신문을 통해 주장해 온 보수논리를 동적인 화면과 음성으로 무차별적 이념공세를 늘어놓을 것이고, 마치 폭스사의 머독처럼 안철수 신드롬으로 상징되고 있는 현재의  국가 여론을 완전 뒤집어 놓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것은 그때 가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정치ㆍ경제지도자들은 세계화야말로 세계인들을 모두 잘 살게 할 것처럼 오도된 정보를 통해 뜬구름 같은 구호를 외치며 정권과 금권을 잡았지만, 실제로는 자본주의의 상징국가인 미국을 필두로 하여 그리스로 대표되는 유럽국가들까지 경제공황 수준으로 몰락시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태를 수습하기는 해야겠는데, 어디에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패닉상태에 빠져버렸다. 마이클 무어 감독이 앞서의 다큐멘타리 영화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자본주의가 최선의 경제정책일 수만은 없다. 그리고 부자들을 더욱 더 풍요롭게 만드는 정책을 통해 국부가 증가될 것이라는 정책 역시 올바른 정책이 아니다. 사회적 조화는 신묘한 것이라, 서로 간에 힘의 균형이 이루어질 때 모두가 윈ㆍ윈 하게 있다. 세계 역사는 어느 한쪽이 강해지면 반드시 전쟁이 일어났음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고, 그 전쟁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핍박을 받아왔음을 교훈으로 남겨주고 있다. 또한 어느 정벌국가도 영원한 승자로 남는 법이 없고, 피정벌국가 역시 마치 고무줄의 반탄력 같은 정신으로 언제나 독립을 쟁취하여 왔다.


마찬가지로 경제 역시 어느 한쪽을 지나치게 강하게 만들면 자신들이 영원한 기업으로 살아남을 것처럼 착각하지만, 100년을 살아남은 기업이 거의 없다는 통계자료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상호공생을 도모하지 않고 유아독존의 몰가치적 맹목성은 결국 자신을 잡아먹는 살모사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5년 재임기간 동안 서울시의 부채가 3배 넘게 증가하였다. 서울시의 지방재정공시를 통해 밝혀진 바에 의하면 지난해 서울시 채무액은 3조8177억원으로 2006년 1조1462억원에 비해 2조6715억원 증가했으며 시민 1인당 채무액은 37만원에 이른다. 서울시장 5년 재임기간 동안에 서울시민들에게 빚만 잔뜩 안겨주고 물러난 것이다. 2010년 말 대한민국 재정적자 규모는 약 407조 2천억에 이른다. 노무현 정권 말인 2007년 299조 2천억에 비하면 108조의 빚이 늘어난 셈이다. 겨우 3년 만에 36% 정도 국가채무가 증가한 것이다. 정부 수립 60년 동안 늘어난 빚이 겨우 299조인데, 지난 3년 동안 108조의 빚이 증가했다. 이명박 정부 말기인 2012년말 경에는 재정적자 규모가 468조에 이를 것이라는 것이 정부가 밝히고 있는 국가재정운영계획이다.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국가부채가 56% 증가되는 엄청난(?) 경제정책이 운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부채 증가를 통해 국민의 살림살이가 나아졌냐하면, 그 어마어마한 돈이 마치 물 먹은 하마처럼 간 곳이 없고, 재벌들의 곳간만 살찌우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볼 수밖에 없다. 결국 감세정책과 고환율정책을 통해 재벌들로 상징되는 대기업들에 유동성확보를 확실하게 밀어주었고, 결국 세금이 적게 걷히다 보니 국가예산이 부족하게 되고, 그 돈을 메꾸려다 보니 국채 발행과 한국은행의 발권을 통해 국가부채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릴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 빚은 고스란히 국민들의 부담으로 남게 되고, 대기업은 정부의 공생정책을 마지 못해 따르는 듯 하면서도 뒷주머니를 따로 차는 이율배반적인 행태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며칠 전 한국경제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의 연간 재정적자 규모가 3년 동안 해마다 1조 달러를 넘었다고 한다. 다시 말해 미국 정부가 빚더미 위에 앉게 되다 보니, 더 이상 빚을 낼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고, 그러다 보니 앞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뒤로 물러서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에 빠져 미국경제가 허우적대고 있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미국이 이라크 전쟁에 쏟아 부은 전비가 무려 8천억 달러가 넘었다는 것이다. 이라크 전쟁만 일으키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4500여명의 미군병사를 전사시키지 않았더라면, 10만명이 넘는 이라크 국민을 죽이지 않았더라면 저 돈을 고스란히 미국의 빈곤층을 위해 사용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인간의 어리석음, 특히 부시 대통령으로 상징되는 공화당의 실정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렇지만 그 뒤치다꺼리를 하기에 힘겨운 오바마 민주당 정권으로서는 미국을 살리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는데, 국민들은 그 허리띠 졸라매는 당장의 고통이 싫어 민주당을 외면하게 되고, 아마 다음 선거에서는 다시 공화당이 득세하게 될 것이다.


국민은 지혜로운 것 같은데도 미래를 위해 오늘을 참지 않으니 어리석고, 그것을 부채질하는 오도된 목적을 가진 언론들의 의도된 여론조작은 아무리 일부 올바른 지성인들이 부르짖어도 메아리 없는 산울림이 되고 마니, 참 아이러니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간한 “한국을 위한 사회정책 보고서”가 밝힌 대한민국 노인 빈곤율 45%라는 통계수치는 우리를 쓸쓸하게 된다. 어디에 “금 나와라 뚝딱!” 하는 도깨비 방망이는 없나? 잘못된 정책을 펴는 정치가와 경제관료들을 두들겨 패 줄 “국민의 몽둥이”는 또 어디에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