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점에도 못 미치는 합격선

2002-12-11     이상연

 

지난 3일 제44회 사법시험 2차시험 합격자가 발표됨으로써 사실상 올해 사법시험이 종료된 셈이다. 그러나 올해 2차시험 합격선이 50점에도 못 미쳐 99년(48.50점)을 제외하고 최근 10여년 동안 최저를 기록했다. 당초 수험가에서 올해 시험 문제가 평이해 전반적으로 합격선이 예년보다 상승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완전히 빗나간 결과다.


합격선이 이 같이 낮은 데는 수험생들이 특정 교과서의 내용에 따라 천편일률적으로 답안을 작성해 채점위원이 점수를 박하게 줬거나 과락자가 상대적으로 많았기 때문이라는 게 수험가의 분석이다. 특히 형소법 문제가 아주 평이하게 출제돼 대부분 수험생들이 답안을 잘 썼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본지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과락이 가장 많은 과목으로 밝혀져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일부 수험생들은 이번 채점에 대해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거나 도대체 채점기준이 무엇이고 어떻게 답안을 써야만 하는지 종잡을 수 없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합격자 발표후 채점이나 과락과 관련된 갖가지 루머들이 봇물을 이루는 등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은 채점과 관련된 정확한 정보가 없고 과락점수에 비해 합격선이 지나치게 낮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공정한 기준으로 채점을 한다 한들 뒷말과 불만이 뒤따를 것이고 수험생들 사이에 '과락 공포증' '면과락이면 합격' '포탄 피하는 것이 실력'이라는 자조적(自嘲的)인 말들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는 이미 본란을 통해서 법학에 대한 고른 지식을 갖춘 사람을 선발하기 위해서는 과락제도라는 장치가 꼭 필요하고 현재 과락 기준의 하향조정이 불가능하다면 합격선을 60점대 이상으로 높여 수험생들의 불만을 해소하고 공감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또한 현재의 과락기준에 대해서도 그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과락기준과 합격선간의 합리적인 연관성을 전제로 한 것이다. 현재의 합격선이 50점선에서 오르내리는 현실에서 40점의 과락기준은 합리적인 연관성이 결여된 너무나 치명적인 수단으로 누구도 수긍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결국 낮은 합격선에 높은 과락기준이 오히려 고른 학식을 갖춘 사람을 선발하려는 과락제도의 취지를 무색케 하고 있다는 점에서 수험생들은 그 개선책을 끊임없이 촉구해왔다. 그런데도 오히려 올해의 합격선이 예년보다 더 떨어졌다는 사실에 수험생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법무부나 채점위원들은 수험생들의 합리적인 요구에도 귀를 막은 꼴이 돼 비판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수험생들이 문제를 삼고 있는 것은 과락기준 그 자체가 아니라 과락기준과 비교해볼 때 합격선이 너무 낮게 설정됨으로써 자칫 과락제도가 시험의 본질에 위배될 여지가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사법시험은 법률분야에 고른 학식과 소양을 갖춘 사람을 선발하기 위한 것이므로 과락제도가 합리성을 결여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시행자의 의무이다. 합격선과 과락기준이 합리적이지 못해 공정한 평가가 이루어져 실력 있는 사람을 가려내야 하는 시험이 왜곡된 결과를 초래할 여지가 많다면 시급히 개선되어야 할 점이다. 그런데도 법무부가 이를 방관하고 채점위원의 고유권한 운운하는 것은 시험을 주관하는 기관으로서의 권한을 명백히 해태(懈怠)하는 것이다. 아울러 채점위원들은 50점대 합격선을 형성하도록 하는 것은 채점위원들의 극단적 권위주의와 독선의 결과라는 비판에 귀담아 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