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저인터뷰]약사 출신 박순덕 변호사

2010-07-09     법률저널

 

“인간을 이해하고 사랑하고픈 변호사”

박순덕 변호사(사시 29기.화연 법률사무소)는 서울대 약대를 졸업한 후, 동 대학 법대에 편입해 사법고시에 도전했다. 일반적으로 라이센스를 가진 약사가 변호사로 진로를 전환하는 경우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박 변호사의 이런 ‘특별한 도전’이 이뤄지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법률저널이 그를 직접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도전, 그리고 다시 도전


어릴 때부터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진로를 정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박 변호사 역시도 그랬다. 그는 “약대가 처음부터 원하던 분야는 아니었던 것 같다”며 과거 약대 재학 시절을 회상했다.


약대 특유의 빡빡한 일정을 따라가면서도 다양한 책을 읽는 것을 잊지 않았다는 그는 특히 지역 보건소 활동에 힘쓰는 한 편 의료보험에 관한 공부도 했다. 전공에만 머물지 않고 인문학, 사회 문제 등에 대해 끊임없이 편식 없는 관심을 기울였던 것.


박 변호사에 따르면 3학년이 되면 약국 개업을 할 것인가, 제약회사를 갈 것인가에 대해 구체적인 진로 설정을 해야 했다. 자신이 강력하게 원했던 진로가 아니었더라도 대개 그런 상황에는 순응하기 마련인데 그는 과감히 용기를 냈다.
“새로운 도전이 필요했다”는 게 그의 전언이다. 마침 변리사라는 직업이 각광받기 시작했다. 처음엔 특허 업무를 주로 하고 이과출신이 많이 간다는 말을 듣고 흥미를 느꼈다.


변리사가 되기 위한 준비도 철저했다. 약대 진학 후 고민했던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졸업 후 바로 변리사 사무실에 직원으로 들어갔다. 무작정 변리사 시험을 준비하기 보다는 현장에서 직접 부딪혀보고 적성과 연계해 고민해보려 한 것.
직접 경험해보니 상상한 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그는 “변리사 사무실 직원으로 1년 가까이 일하면서 변호사가 적성에 더욱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변리사는 약사처럼 한정된 분야를 전공으로 하지만, 변호사는 사람의 전반적인 의료를 담당하는 의사처럼 법의 모든 부분을 체계적으로 공부한다. 그 점이 끌렸다”고 말했다.


막상 변호사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자 또 다른 선택을 해야만 했다. 사시를 바로 준비할 것인지, 법대에 편입해서 사시를 준비할 것인지에 대해 고심해야 했던 것. 이번에도 그는 과감히 두 번째 도전에 뛰어들었다. 합격하기 어렵기로 소문난 서울대 법대 편입을 준비하기로 결정했다. 이유를 묻자 그는 “단편적으로만 법을 알 것 같은 우려에 법과대학에서 폭넓은 시각으로 공부를 하며 사시를 준비해야겠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선택과 집중


박 변호사가 편입을 결심하고 변리사 사무소를 그만 두던 날, 그의 가치관에 영향을 준 사건이 일어났다. 그는 “그 때 일하던 사무소의 한 변리사가 퇴직 사유를 듣고는 펜을 선물해주면서 해줬던 조언이 기억난다”며 그 때를 떠올렸다.


공부에 뜻을 품고 퇴사하던 그가 받은 조언은 “무엇인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자기 시간 관리를 철저히 하라”는 것.
박 변호사에 따르면 그에게 조언을 건넨 변리사는 관련 사무소에서 일을 배우면서도 매일 새벽 3시경 일어나 틈새 시간을 놓치지 않고 공부했기에 합격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평소 그 분을 보며 ‘머리 좋고 실력 있으니까 변리사를 하는구나’하는 막연한 생각만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 치밀한 자기 관리와 성실한 노력이 있었던 것을 깨닫고 앞으로 공부하는데 큰 지침이 됐다”면서 “그 일이 있은 후 ‘약사 자격증을 믿고 혹시나 법학 공부가 어려워질 때마다 뒤로 물러서지 말자. 항상 최전선에 있다는 생각으로 집중하여 공부하자’는 결심을 했다”고 고백했다.

독서백편 의자현


“이과 출신이었기 때문에 법학을 공부하는 게 쉽지 않았다. 하루 종일 한 페이지를 되풀이해 읽었을 때도 있었다”는 그는 독서백편 의자현(讀書百遍 意自見.책을 백 번 읽으면 그 뜻이 스스로 보인다) 정신으로 편입을 비롯한 모든 수험 생활을 이겨냈다. “이해가 안 되면 무조건 외우고 외웠다. 그러다보니 법의 중요한 문맥의 큰 줄기를 저절로 알게 됐다”고 했다.


법은 사람을 이해하는 학문


사시합격이 시급하다고 해서 메마르게 시험공부만 하다 보면 법대로 편입한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 박 변호사는 졸업까지 모든 수업에 거의 빠짐없이 출석했다. 또한 그는 산악부, 법불회 등 다양한 동아리 활동에 참여했다.


“동아리에 참여하는 게 간혹 수험 생활에 불안감을 주지 않았나”고 하자, 그는 “편입 후 나이 차 나는 동기들과 어울리면서 물론 어려운 점도 있었다”면서도 “그런 경험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동기들과 잘 지내기 위해 ‘저 사람은 이런 사람일 것이다’ 식의 편견을 버리고 역지사지의 정신을 가슴 속에 새겼다. 이는 훗날 그가 변호사가 됐을 때 의뢰인들의 입장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박 변호사는 “법은 사람을 위해 발생한 학문이다. 즉 인간 사회 내에 충돌을 최소화하기 위해 발생한 학문이기에 사람의 기저를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뢰인의 마음을 치유하는 변호사


변호사가 맡은 사건 중에서 가장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분야는 바로 가사 사건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의뢰인의 말을 오랜 시간 들어줘야 하며 속된 표현으로 ‘인풋보다는 아웃풋이 적다’는 말이 암암리에 나돌 정도다. 우리나라의 가사 전문 변호사 Top10 안에 드는 박 변호사는 가사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그는 “가사 사건으로 찾아오는 의뢰인들 대부분은 마음에 상처가 있는 이들이다. 때문에 상담 시 자기 인생을 구구절절 이야기하는 의뢰인이 많다. 이혼 사유를 알아보는 과정에서 남편, 시댁 문제 심지어는 사회 구조적 문제까지 다 나온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상담이 길어질지언정 편견 없이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경청하면 그것만으로도 의뢰인이 정서적 안정감을 되찾는다”면서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가사 전문 변호사로서 보람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의뢰인이 변호사와의 상담을 통해 안정감을 찾고 삶의 의지를 얻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는 건 다른 사건에선 찾기 힘든 가사 사건만의 장점인 셈.


“가사전문 변호사가 되길 희망하는 후배들에게 조언해 달라”고 부탁하자 그는 “공부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직접 사건을 경험하면서 깨닫는 것이 필요하다”며 “굳이 팁을 말하자면 사람을 이해하고 포용하려는 자세가 갖춰져 있다면 변호사로서 가사를 담당할 때 큰 스트레스를 받을 가능성이 낮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가사 사건을 전담하게 되면 가끔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입장을 가진 의뢰인도 찾아오고, 설명을 반복해도 알아듣지 못하거나 심한 경우 분노를 조절 못하는 의뢰인도 있기 때문에 변호사는 늘 포용의 자세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의뢰인을 상담하다보니 그에게도 별명이 생겼다. ‘마음을 치유해주는 변호사’가 그것. 그는 맡은 가사 사건의 다수를 중재로 이끌며 소송에서 자칫 다칠 수 있는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는데 힘썼다. 이처럼 소송을 궁극적으로 치유와 화해로 이끌 수 있었던 저력 뒤에는 포용의 자세가 있었다.

인생은 마라톤


인생은 그에게 마라톤이다. 그는 오는 9월부터 한양대 석박사 통합과정(가족법)에 지원해 재산분할, 국제이혼 등 보다 전문적인 공부를 하기 위해 주력할 계획이다.


또한 그는 가사 사건의 일종이기도 한 아이들 보호 문제에도 힘을 쏟을 생각이다. 그는 “어린 아이는 보호의 대상임에도 장애아, 가정 학대, 부모가 불의의 사고를 당했을 경우처럼 의외로 방치될 때가 많다”면서 “다양한 사회적 보호를 필요로 하는 아이들에게 관련 안전장치를 마련해주는 것이 굉장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그는 수험생들에게 “인생을 마라톤처럼 길게 보고 공부하는 과정을 풍요롭게 하기”를 당부했다. 수험생활 기간 동안 고립돼 있기 보다는 자기 나름의 고통을 순화할 수 있는 취미나 해소 요법을 이용하며 지인들과도 교류하는 것이 좋다는 뜻이다. 사시 합격의 일등공신이 동기, 부모님, 지인이었다는 그는 “사람들과 서로 돕고 어울리면 수험 생활에 간접적인 동력이 될 뿐만 아니라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포그니 기자 desk@le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