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도 조절 실패가 아니라 부실·부정채점 주장하는 것”
공무원에 대한 면제 제도 폐지 및 민관 합동 논의 요구
[법률저널=안혜성 기자] 지난해 시행된 세무사 2차시험에 대해 부정 채점 및 ‘세무공무원 특혜’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정부의 관련 제도 개편 방향에 수험생들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최근 언론 보도를 통해 정부가 세무사시험 제도의 개편을 위해 다음달 15일 세무사자격심의위원회에서 기재부와 국세청 등 관계자들과 함께 논의를 할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일부 세무공무원 출신에게 면제되는 세법학 1부 응시생의 82.3%가 과락을 한 부분에 대해 ‘시험의 난이도 조절 실패’를 원인으로 보고 개선 방안을 모색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세무공무원에 대한 시험 과목 면제 제도는 변리사, 공인회계사, 법무사 등에서도 공무원에 대한 시험 면제 제도를 두고 있는 상황에서 세무 공무원에 대해서만 이를 박탈할 수 없다는 이유로 유지하겠다는 방침이라는 점이 문제시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세무사시험제도개선연대(이하 세시연)는 26일 “기사로 접한 정부의 문제 인식이 매우 잘못됐다”며 우려를 표명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먼저 정부의 판단과 달리 논란의 원인은 “시험 난이도 조절 실패 문제가 아니”라는 게 세시연의 주장이다. 세시연은 “해마다 시험의 난이도는 쉬울 수도 있고 어려울 수도 있으나 상대평가의 특성상 어려워도 조금 더 잘 쓴 사람에게 점수가 부여되고 못 쓴 사람에게 점수가 적게 부여돼 과락률을 조정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해당 과목은 일부 세무공무원 출신이 면제 받는 과목이므로 이 같은 특성을 채점 과정에서 감안하는 것이 형평성에 맞다고 지적했다. 즉, 시험 자체의 난도와 시험 면제 특혜 등의 상황은 적절한 채점을 통해 보정이 가능하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그런데 세시연은 이번 대규모 과락 사태의 경우 단순히 문제가 어렵고 쉽고의 문제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부정채점이 이뤄졌다고 보고 있다. 합격자 발표 후 불합격한 수험생들이 답안 열람을 통해 복기한 답안을 비교해 봤고 그 과정에서 채점 기준을 알기 힘들 정도로 무작위 채점이 이뤄진 부분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 대규모 과락이 이뤄진 세법학 1부의 경우 100점 만점 중 20점이 배정된 ‘상속세 및 증여세법’의 경우 응시자 3962명 중 2025명이 0점을 받았다는 점을 들었다. 그 중에서도 단순 법령을 묻는 4점 배점의 문제에서 정답을 쓴 수험생이나 정답과 함께 부연 설명까지 한 수험생은 0점을 받고 다른 표현을 쓴 수험생은 4점을 모두 받았다. 또 절반을 맞춘 수험생이나 4점을 받은 수험생과 유사한 답안을 쓴 수험생은 0점을 받았다는 게 세시연의 설명이다.
뿐만 아니라 다른 문제의 경우 계산과정이 다 틀려도 답만 맞으면 5점, 10점을 부여했다는 점을 언급하며 세시연은 “이번 사태는 난이도 조절 실패가 아닌 부실채점, 나아가 부정채점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험과목 면제 혜택을 유지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이다. 세시연은 개선의 방향은 “구조적 문제의 개선”이 돼야 한다며 “근본적인 원인을 배제하고 이뤄지는 논의가 무슨 성과를 낼지 눈에 훤하다”고 꼬집었다.
이들은 “세무경력직 공무원에게 시험 일부 과목을 면제해주고 일반 수험생들과 경쟁을 붙이는 구조는 전 세계적으로 일본 밖에 없다. 선진법이라 여기는 미국법과 독일법에서는 세무경력직을 정원 외로 선발하며 그 방식도 단순히 연차만을 인정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실무경력을 바탕으로 한다”며 “우리나라는 구시대적인 일본의 방식을 존치하고 있다”는 의견을 보였다.
시험 과목 면제가 유지되는 한 언제든지 이번 사태와 같은 상황이 재발할 수 있다는 점, 세무공무원들의 반발이 우려된다면 정원 외 선발을 고려할 수 있다는 점 등도 시험 과목 면제 제도를 유지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을 비판하는 근거로 제시했다.
나아가 논의의 구성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세시연은 “과거 국세청에서 세무사시험을 출제했는데 공정성 시비가 많아 2009년도에 한국산업인력공단으로 위탁됐지만 아직도 국세청의 입김이 작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세무사자격심의위원회의 구성원 12명 중 5명이 국세청장, 국세청차장, 국세청 소속 3급 이상 공무원 등으로 구성돼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세무공무원에 대한 혜택이 문제된 사안에서 고용노동부 산하의 한국산업인력공단에만 문제를 돌리고 제도 개선 논의의 주체는 국세청의 영향력이 큰 세무사자격심의위원회로 한다는 게 모순된다는 것. 이에 세시연 측을 포함한 민관 합동의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세시연은 “기사를 통해 접한 내용은 여태껏 목소리를 낸 세시연의 입장을 정부가 한 번이라도 경청했는지 의심스럽다”며 “지금이라도 정부는 세시연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성신여자대학교 법학과 김봉수 교수
https://www.youtube.com/watch?v=me_xCPEHs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