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범석 일반행정사
(제1회 행정사 시험 합격, 現 모두다행정사 대표 행정사)
세월호 참사 이후 온 나라가 관피아(관료+마피아)로 떠들썩하다. 해양수산부 고위 관료들이 퇴직 후 한국선급 간부로 재취업해 관리·감독을 해왔던 것이 밝혀지면서다.
유독 우리나라는 관피아 적폐가 심각하다. 중앙정부 산하 17곳의 4급(서기관) 이상 재취업 관피아가 384명이나 되고 특히 국내 10대 로펌에는 고문으로 일하는 경제 부처 출신 전직 관료가 177명에 달한다.
사실 이 같은 관피아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현재 언론은 퇴직 고위 관료가 산하기관이나 민간업체로 자리를 옮겨 영향력을 행사하는 형태, 즉 전형적인 관피아만 국한해서 집중 조명하고 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관피아들이 정부 주도로 양산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공무원 특혜 조항이 낳은 ‘리틀 관피아’를 두고 하는 말이다.
행정사라는 전문 자격사가 있다. 행정사는 행정관청에 제출하는 서류를 작성하는 일을 한다. 행정사는 행정소송과 비견되는 행정심판은 물론, 각종 인·허가에 대한 업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민원이 점점 증가하는 행정국가에서 그 역할이 상당하다.
이 자격은 그간 일정한 경력의 공무원에게만 부여해왔다가, 헌법소원 끝에 2013년에 처음으로 1차 객관식, 2차 논술 시험을 실시해 1만 2516명 중에 296명의 민간 출신 행정사를 뽑는 데 이르렀다.
그런데 같은 해 6만 6000여 명의 전·현직공무원이 경력을 인정받아 행정사 자격증을 받아갔다. 이는 논술 시험 출신을 230년간 뽑아야 채울 수 있는 숫자다. 올해에는 논술 시험으로 330명을 뽑는 데 반해, 경력 면제자는 8만 7000여 명 이상이 나올 전망이다. 향후에도 최소 수십만 명이 시험 한 문제 풀지 않고 행정사 자격을 받아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 모든 문제의 발단은 공무원 특혜 조항에 있다. 현행 행정사법은 2011년 이전에 10년 이상 공무원으로 근무하거나 6급 이상의 직에서 5년 이상 근무한 자에게는 시험 전부를 면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그 대상이 ‘공무원’이라는 점이다.
일반행정직은 물론 경찰관, 법원직, 세무직, 군인, 교직원 등 일단 공무원이기만 하면 수행했던 업무와 상관없이 면제자격으로 행정사가 될 수 있다. 과거 일정한 직군의 공무원에게만 자격증을 부여하거나 일부 시험만을 면제해왔던 법무사, 노무사, 세무사 자격과 비교하면 상식선에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우리나라 행정사 제도의 모태가 됐던 일본의 경우만 해도 공무원 출신에게는 직무내용을 엄격하게 심사해 행정사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행정사(행정서사) 자격을 내주지 않고 있다.
행정사 자격 면제 제도는 관피아 폐단의 연장선상에 있다. 만일 행정부의 주장대로 공무원 경력을 살려 행정사 자격을 줌으로써 민원 해결에 도움을 주고자 한다면 최소한 전문 직무와 관련된 업무만을 수행하게 하고 행정법과 행정절차론에 대한 기본 지식 정도는 점검해야 한다. 적어도 일반인이 바라보는 상식의 눈높이는 그 정도다. 전문 자격사의 무지로 발생한 피해를 고스란히 국민이 감당해야 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관피아의 정체는 퇴직 고위관료 집단이 아니다. ‘공무원은 퇴직 후 특혜를 누려야 한다’는 인식에 물들어 있는 공무원 집단, 그 자체가 관피아의 표상이다. 행정부 자체가 합법적으로 ‘리틀 관피아’를 양산하고 있는 형국이다.
고위 관료 출신만 제재하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사회 전체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는 불공정·불합리한 공무원 특혜를 없애야 한다. 그것이 관피아를 척결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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