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현 한국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1. 서 언
형사소송법상 긴급체포를 하기 위해서는 피의자가 ① 사형 · 무기 또는 장기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중범죄 혐의의 상당성), ②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망 또는 도망할 우려가 있고(체포의 필요성 내지 구속사유), ③ 피의자를 우연히 발견한 경우 등과 같이 긴급을 요하여 체포영장을 받을 시간적 여유가 없을 것(체포의 긴급성)을 요건으로 한다(형사소송법 제200조의3 제1항).
긴급체포 요건과 관련하여 판례는 ‘긴급체포는 영장주의원칙에 대한 예외인 만큼 형사소송법 제200조의3 제1항의 요건을 모두 갖춘 경우에 한하여 예외적으로 허용되어야 하고 요건을 갖추지 못한 긴급체포는 법적 근거에 의하지 아니한 체포로서 위법한 체포에 해당한다’(대법원 2002.6.11.선고 2000도5701 판결; 대법원 2003.3.27.자 2002모81 결정; 대법원 2005.11.10.선고 2004도42 판결; 대법원 2006.9.8.선고 2006도148 판결)고 그 원칙을 천명하면서도 ‘긴급체포의 요건을 갖추었는지 여부는 사후에 밝혀진 사정을 기초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체포 당시의 상황을 기초로 판단하여야 하고 이에 관한 검사나 사법경찰관 등 수사주체의 판단에는 상당한 재량의 여지가 있다고 할 것이나, 긴급체포 당시의 상황으로 보아서도 그 요건의 충족 여부에 관한 검사나 사법경찰관의 판단이 경험칙에 비추어 현저히 합리성을 잃은 경우에는 그 체포는 위법한 체포라 할 것이다’(대법원 2002.6.11.선고 2000도5701 판결; 대법원 2003.3.27.자 2002모81 결정; 대법원 2005.11.10.선고 2004도42 판결; 대법원 2005.12.9.선고 2005도7569 판결; 대법원 2006.9.8.선고 2006도148 판결)고 하여 긴급체포의 요건은 체포 당시의 상황을 기초로 수사기관의 판단에 상당한 재량을 주어 현저히 합리성을 잃지만 않았다면 긴급체포가 위법하지 않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또한 형사소송법은 위와 같은 요건에 해당하는 경우라도 긴급체포의 주체는 검사와 사법경찰관으로 제한하고 있으며(법 제200조의3 제1항),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이 피의자를 긴급체포하기 위해서는 피의자에게 긴급체포를 한다는 사유를 알리고 체포할 수 있는데(법 제200조의3 제1항), 구체적으로는 피의사실의 요지, 체포의 이유와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음을 말하고 변명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법 제200조의5).
이하에서 긴급체포의 요건에 해당한다고 본 경우와 그 반대의 경우로 나누어서 판례를 통해 상세히 검토한 후에 긴급체포의 절차와 관련된 판례의 입장도 살펴보기로 한다.
2. 긴급체포의 요건에 해당한다고 본 경우
가. 대법원 2003.4.8.선고 2003다6668 판결
【사 안】
(1) 원고(피의자)가 1998.11.경부터 김경주 및 약사 이기택과 공동으로 군산에서 약국을 운영하면서 1999.9.경 김제에 같은 상호의 약국을 추가로 개설한 사실, 그 무렵 원고와 김경주, 이기택 사이에 분쟁이 생겨 원고가 2000.2.경 전종진과 약사인 소외 1의 투자를 받아 들여 그들과 동업으로 김제 소재 약국을 운영하기로 하고, 소외 1이 한약사자격이 있는 약사를 고용하여 영업한 사실, 그런데 소외 1은 한약사가 아님에도 한약사면허증을 위조하여 소지하고 있다가 2000.6.10. 병의원 및 대형약국의 마약류 유통과정을 단속하던 전주지방검찰청 소속 수사관들에게 적발된 사실, 이에 검찰수사관들은 내사를 하여 약사가 아닌 원고와 김경주가 김제에서 위 약국을 개설하고 소외 1을 고용하여 약국을 운영하고 있으며, 또 소외 1이 한약사면허증을 위조하여 한약을 판매한 혐의를 인지하고, 검사의 지휘에 따라 마약수사주사 임종옥 등이 2000.6.21. 11:30경 군산시 나운동 830-3에 있는 식당에서 원고를 긴급체포하여 전주지방검찰청으로 인치한 사실, 그 날 임종옥 등 수사관들은 원고와 김경주, 소외 1 등에 대하여 위와 같은 범죄혐의에 관한 조사를 하였으나, 원고에 대한 범죄혐의가 인정되지 아니하여 원고를 석방하였다.
(2) 이에 대해 원심(항소심)은 위 사실관계에 기초하여 원고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을 동안 원고가 도망할 염려가 있다고 볼 정황이나 징후가 있었다고 볼 아무런 자료가 없고, 원고에 대한 위 범죄혐의에 관하여 내사를 하여 왔던 점, 원고를 체포한 곳은 원고가 식당 영업을 하며 평소 거주하는 곳이었던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원고를 체포할 당시 긴급한 필요가 있었던 것으로는 보이지 아니하고, 원고에 대한 위 범죄혐의의 수사 및 이를 위한 체포의 필요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원고에 대하여 먼저 출석을 요구하거나 혹은 출석을 요구할 경우 이에 응하지 않고 도주할 우려가 있다면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체포하였어야 할 것임에도 이러한 조치는 취하지 아니한 채 바로 긴급체포를 하였으므로, 이는 그 요건을 갖추지 못한 위법한 체포라고 하여 원고의 국가배상법에 의한 손해배상청구를 일부 인용하였다.
【판 단】
(1) 수사기관에서 2000.6.10. 병의원의 마약류 및 향정신성의약품을 단속하던 중 원고가 동업으로 운영하던 위 약국에서 위조된 한약사면허증이 발견되어 위 약국을 동업하던 원고에게 약사법위반과 공문서위조의 범죄혐의가 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고, 그에 관한 내사를 진행하였으나 그 범죄혐의에 관하여 확실한 증거자료를 수집하지 못한 수사기관으로서는 원고를 긴급체포한 2000.6.21. 당시에 원고의 출석을 요구하여 수사를 진행하여도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없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웠던 것으로 인정되므로, 원고를 긴급체포함에 있어서 긴급성이 없는 것이 객관적으로 밝혀졌다고 할 수 없고, 따라서 임종옥 등 수사관들이 당시에 수집된 자료 등을 종합하여 긴급성이 있다고 판단하여 원고를 긴급체포한 행위에 대하여는 객관적으로 합리적 근거를 갖추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긴급체포를 하였다고 인정할 수 있는 사정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심이 이와 달리 원고에 대한 긴급체포가 위법하다고 보고 피고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것은 긴급체포와 국가배상책임의 요건에 관한 해석적용을 그르쳐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나. 대법원 2005.11.10.선고 2004도42 판결
【사 안】
(1) 검찰관은 피의자로부터 주식회사 삼진건설과 관련하여 공사시 편의제공 등을 부탁받은 제11전투비행단 시설대대장 공소외 2의 진술을 먼저 확보한 다음, 2003.5.17. 군검찰의 소환에 응하여 자진출석한 피의자로부터 자술서를 제출받고 제1회 피의자신문조서를 작성하였고, 그 후 피의자로부터 장병신체검사 지정병원 선정과 관련한 부탁을 받은 제11전투비행단 인사처장 공소외 3 및 의무전대장 공소외 4의 진술을 확보한 후, 2003.5.18. 03:50경 피의자를 긴급체포하였다.
(2) 피의자는 인사처장 공소외 3에게 2002년 장병신체검사 지정병원으로 성서병원이 선정될 수 있도록 검토해 달라는 부탁을 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성서병원으로부터 그 대가를 수수하거나 약속한 사실을 부인하고, 공사 편의제공과 관련하여 시설대대장 공소외 2에게 사실상의 영향력을 행사한 사실도 부인하였다.
【판 단】
피의자가 담당 부대 장교들에 대한 동향관찰보고를 통하여 진급, 인사 등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무부대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피의자가 관련자들과의 접촉을 통하여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다고 보이므로 피의자를 긴급체포할 당시 그 요건의 충족 여부에 관한 검찰관의 판단이 경험칙에 비추어 현저히 합리성을 잃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할 것이고, 긴급체포 당시 피의자가 범죄사실의 요지, 긴급체포의 이유와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음을 고지받았고 변명의 기회가 주어진 사실도 인정되므로, 피의자에 대한 긴급체포가 적법하게 이루어졌다고 하겠다.
다. 대법원 2005.12.9.선고 2005도7569 판결
【사 안】
피의자에 대한 고소사건을 담당하던 경찰관이 피의자의 소재 파악을 위해 피의자의 거주지와 피의자가 경영하던 공장 등을 찾아가 보았으나 피의자가 공장 경영을 그만 둔 채 거주지에도 귀가하지 않는 등 소재를 감추자 법원의 압수수색영장에 의한 휴대전화 위치추적 등의 방법으로 피의자의 소재를 파악하려고 하던 중인 2004.10.14. 23:00경 주거지로 귀가하던 피의자를 발견하여 긴급체포하였다.
【판 단】
피의자가 피해자를 기망하여 판시 금액 상당의 전자안전기를 편취한 범죄사실을 인정할 수 있으며, 피의자가 계속 소재를 감추려는 의도가 다분하고 증거인멸 및 도망의 염려가 있다는 이유로 피의자를 사기 혐의로 긴급체포한 사실을 알 수 있는바, 긴급체포의 요건에 관한 법리 및 이 사건 긴급체포의 경위 등에 비추어 보면 피의자에 대한 긴급체포가 위법한 체포에 해당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3. 긴급체포의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경우
가. 대법원 2002.6.11.선고 2000도5701 판결
【사 안】
검사는 1999.11.29. 피의자 1에게 뇌물을 주었다는 피의자 3 및 관련 참고인들의 진술을 먼저 확보한 다음, 현직 군수인 피의자 1을 소환·조사하기 위하여 검사의 명을 받은 검찰주사보 서진학이 1999.12.8. 16:40경 광주군청 군수실에 도착하였으나 위 피의자가 군수실에 없어 도시행정계장인 박종인에게 군수의 행방을 확인하였더니, 위 피의자가 검사가 자신을 소환하려 한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자택 옆에 있는 초야농장 농막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니 수사관이 오거든 그 곳으로 오라고 하였다고 하므로, 같은 날 17:30경 서진학이 위 박종인과 같이 위 초야농장으로 가서 그 곳에서 수사관을 기다리고 있던 위 피의자를 긴급체포하고, 그 후 같은 달 11. 구속영장을 발부받을 때까지 위 피의자를 유치하면서 검사가 같은 달 9.과 10.에 이 사건 각 피의자신문조서를 작성한 사실을 알 수 있다.
【판 단】
피의자 1은 현직 군수직에 종사하고 있어 검사로서도 위 피의자의 소재를 쉽게 알 수 있었고, 1999.11.29. 피의자 3의 위 진술 이후 시간적 여유도 있었으며, 위 피의자도 도망이나 증거인멸의 의도가 없었음은 물론, 언제든지 검사의 소환조사에 응할 태세를 갖추고 있었고, 그 사정을 위 서진학으로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할 것이어서, 위 긴급체포는 그 당시로 보아서도 긴급체포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쉽게 보여져 이를 실행한 검사 등의 판단이 현저히 합리성을 잃었다고 할 것이다.
나. 대법원 2003.3.27.자 2002모81 결정
【사 안】
(1) 피의자는 1996.6.15. 22:25경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3가 822 앞 편도 4차로 도로에서 시내버스를 운전하여 1차로로 진행하던 중 마침 1차로를 진행하던 피해자 김동진 운전의 승용차 우측 앞 펜더 부위를 위 버스 좌측 뒷바퀴 앞 부위로 충격하여 수리비 25만원이 들도록 손괴하고도 정차하여 피해 여부를 확인하는 등 필요한 조치 없이 도주하였다는 피의사실로 서대문경찰서에 입건되어 조사를 받은 다음, 1996.7.23. 서울지방검찰청 서부지청에서 '위 피의사실이 인정되지만 경미한 접촉 사고로 피해자의 과실도 적지 아니하고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이 참작되어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2) 피의자는 1998.2.9. 위 검찰청에 '담당 경찰관이 공권력을 남용하여 피해자인 피의자를 가해자로 입건하였다.'는 취지의 진정을 하였고 2.18. 원 결정을 뒤집을 이유를 발견할 수 없다는 이유로 사건이 종결되었고, 그 후 다시 1998.7.13. 같은 취지의 진정을 하였으나, 같은 해 9.8. 기록을 보아도 종전 결정을 번복할 자료가 없고 피진정인이 형사처벌을 받을 정도의 부당한 일처리를 했다고 볼 만한 자료가 없다는 이유로 역시 사건이 종결되자, 9.16. 이의신청을 하였고, 이에 위 진정사건을 담당하게 된 검사는 김동진에게 1998.12.2. 출석하도록 요구하였으나 당일 김동진이 출석하지 아니하자, 다시 김동진과 피의자에게 1998.12.16. 출석하도록 요구한 결과, 당일 김동진이 출석하지 아니한 반면 피의자는 출석을 하였으나, 대질조사를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피의자에 대하여 진술조서를 작성하지 아니한 다음, 이미 기소유예 처분으로 종결되어 있던 피의자에 대한 위 도로교통법위반 피의사건을 1998.12.24.자로 재기하였다.
(3) 그후 피의자가 1999.1.14. 검사의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다른 검사가 위 사건을 담당하게 하여 달라는 취지의 말을 한 다음, 1999.2.18. 11:00경 검사의 사무실에 다시 전화를 걸어 검사로부터는 조사를 받을 수 없다고 하고, 같은 날 16:30경 위 지청 형사 제2부장검사 부속실에서 담당검사의 교체를 요구하고자 부장검사와의 면담을 기다리고 있던 중 담당검사에 의하여 위 도로교통법위반 피의사실에 기하여 긴급체포된 후 마포경찰서 유치장에 감금되기에 이르렀고, 한편, 피의자에 대한 기소유예 처분 당시 수사기록에는 실황조사서, 피의자에 대한 피의자신문조서(경찰), 김동진의 진술서, 목격자 OOO의 명함, 합의서 및 반성문 등이 첨부되어 있으며, 그 후 담당검사가 1999.2.3. 김동진을 상대로 진술조서를 작성하였는데, 당시 김동진은 종전과 마찬가지로 피의자의 잘못으로 위 교통사고가 발생한 것이라는 취지의 진술을 하였는데, 담당검사는 위 긴급체포 다음날인 1999.2.19. 피의자에 대한 피의자신문을 한 다음 17:25분경 피의자를 석방하였고, 같은 해 3.22. 위 도로교통법위반 피의사실을 공소사실로 하여 피의자를 벌금 100만원에 약식기소하였고 정식재판에 회부된 후 무죄로 확정되었다.
(4) 피의자는 검사가 직권을 남용하여 긴급체포한 후 그 다음날까지 불법구금하였다며 고소하였고 검찰에서 무혐의결정을 하자 법원에 재정신청을 하였으나 원심은 피의자에 대하여 수사 중이던 도로교통법위반의 점은 장기 3년 이상의 징역형에 해당하는 죄로서, 피의자의 출석 불응 및 조사거부 행위, 피의자에 대한 체포ㆍ구금의 경위 등을 종합하여 볼 때, 피의자에 대한 긴급체포ㆍ감금이 증거를 인멸할 염려 및 도망의 염려나 긴급체포 사유를 결여하였다고 보기 어렵고 달리 이를 인정할 자료도 없어 검사의 이 사건 불기소처분은 정당하다는 이유로, 피의자의 이 사건 재정신청을 기각하였다.
【판 단】
(1) 이 사건 긴급체포 당시 피의자는 담당검사가 위와 같이 종결된 도로교통법위반 피의사건을 재기함으로써 다시 수사의 대상자인 입장에 놓이게 되었지만, ① 그것은 어디까지나 피의자가 무혐의라는 취지의 주장과 함께 수사담당 경찰관을 상대로 진정을 제기함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었던 점, ② 검찰은 피의자에 대한 위 도로교통법위반 사건에 관하여 나름대로의 증거수집이 마쳐졌다고 판단하고 제반 정상을 참작하여 피의자에 대하여 기소유예의 종국처분을 한 다음, 피의자의 진정에 따라 이를 재기하여 그 피해자인 김동진에 대한 확인 조사까지 마쳤던 점, ③ 또한 피의자는 이 사건 긴급체포 당시 수사대상자인 동시에 진정인의 지위도 아울러 가지고 있었는데, 위와 같은 일련의 수사 과정에서 수사대상자로서 경찰과 검찰의 출석요구에 순순히 응하였을 뿐만 아니라, ④ 진정인의 지위에서 철저한 수사를 요구하는 능동적인 입장에 있었고, 다만 최초 진정일인 1998.2.9.부터 1년 가까이 지난 1999.1.14. 이후에야 비로소 담당검사의 교체를 요구하는 태도를 취하였을 뿐인 점, ⑤ 특히 이 사건 긴급체포 당시 피의자는 진정인의 입장에서 담당검사의 상관인 형사 제2부장검사를 면담하기 위하여 스스로 검찰청을 방문하여 대기하고 있었던 점 등의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볼 때, 이 사건 긴급체포는 체포영장을 발부받을 수 없을 정도로 긴급을 요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도저히 볼 수 없어 긴급성의 요건을 갖추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위와 같은 입장의 피의자가 도망할 염려나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다고 볼 수도 없는 만큼 형사소송법 제70조 제1항 제2호나 제3호의 요건 또한 갖추지 못한 것으로서, 이를 실행한 검사의 판단은 당시의 상황과 경험칙에 비추어 현저히 합리성을 잃은 경우에 해당하므로, 이 사건 긴급체포는 위법한 체포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2) 그리고 위와 같은 사실관계에 비추어 보면, 검사에게는 직권을 남용하여 피의자를 체포ㆍ감금한다는 점에 대한 고의도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
다. 대법원 2006.9.8.선고 2006도148 판결
【사 안】
(1) 위증교사 등의 혐의로 기소된 변호사(피고인 1)가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자 검사가 항소한 후에 위 위증교사 등 사건에 대한 보완수사를 한다며 변호사사무실의 사무장(피고인 2)에게 검사실로 출석하라고 소환하였고, 사무장이 검사실에 출석하기로 한 날에 위 위증교사 등 사건과 관련하여 “사무장이 A에 대한 증인신문사항을 작성할 당시에 A가 허위 증언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취지로 진술한 B(이미 위 위증교사 등 사건의 판결에서 그 진술의 신빙성이 배척된 바 있음)와 사무장을 대질조사하기 위하여 B도 소환하였다. 그리하여 사무장이 소환일자에 자진출석하자 검사가 사무장에 대하여 참고인조사를 하지 아니한 채 곧바로 위증 및 위증교사 혐의로 피의자신문조서를 받겠다고 하였고, 이에 사무장은 자신의 인적사항만을 진술한 후에 검사의 승낙을 받아 변호사에게 전화로 “검사가 자신에 대하여 위증 및 위증교사 혐의로 피의자신문조서를 받고 있으니 여기서 데리고 나가달라”로 말하였다. 위와 같은 상황에서 더 이상의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는 사이에 변호사가 검사실로 찾아와서 검사에게 “참고인조사만을 한다고 하여 임의수사에 응한 것인데 사무장을 피의자로 조사하는데 대해서는 협조를 하지 않겠다”는 취지로 말하고 사무장에게는 검사실에서 나갈 것을 지시하였다. 이에 따라 사무장이 일어서서 검사실을 나가려 하자 검사가 사무장에게 “지금부터 긴급체포하겠다”고 말하면서 사무장의 퇴거를 제지하려고 하였고 변호사는 사무장에게 계속 나가라고 하면서 사무장을 붙잡으려는 검사를 몸으로 밀어 이를 제지하는 바람에 검사는 상해를 입었다.
(2) 검사는 변호사를 공무집행방해죄와 상해죄로(처음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 혐의로 기소하였으나 1심 내지 2심에서 상해죄가 인정됨), 사무장을 위증죄와 위증교사죄로 각 기소하였다. 이후 변호사에 대한 공무집행방해죄 등은 1심과 2심에서 모두 유죄가 선고되고, 사무장에 대한 위증죄 등은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되고 2심에서는 검사의 항소가 기각됨에 따라 검사와 변호사가 이에 불복하여 상고를 하게 되었다.
【판 단】
사무장은 참고인조사를 받는 줄 알고 검찰청에 자진출석하였는데 예상과는 달리 갑자기 피의자로 조사한다고 하므로 임의수사에 의한 협조를 거부하면서 그에 대한 위증 및 위증교사 혐의에 대하여 조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귀가를 요구한 것이므로, 검사가 사무장을 긴급체포하려고 할 당시 사무장이 위증 및 위증교사의 범행을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볼 수 없고(B의 진술은 이미 무죄가 선고된 변호사에 대한 위증교사 등 사건의 1심 판결에서 그 신빙성이 배척되었으므로 B의 진술만으로 사무장이 위증 및 위증교사의 범행을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없다), 사무장에 대한 소환 경위, 직업 및 혐의사실의 정도, 변호사의 위증교사죄에 대한 무죄선고, 변호사의 위증교사 사건과 관련한 사무장의 종전 진술 등에 비추어 보면 사무장이 임의수사에 대한 협조를 거부하고 자신의 혐의사실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기 전에 퇴거를 요구하면서 검사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퇴거하였다고 하여 도망할 우려가 있다거나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다고 보기도 어려우므로, 위와 같이 긴급체포를 하려고 한 것은 그 당시 상황에 비추어 보아 형사소송법 제200조의3 제1항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쉽게 보여져 이를 실행한 검사 등의 판단이 현저히 합리성을 잃었다고 할 것이다(이재상, 형사소송법, 박영사, 2012, 247면에 의하면 ‘조사를 받게 위하여 수사관서에 자진 출석한 피의자를 긴급체포한 경우에도 긴급체포는 위법하다고 해야 한다’며 위 판례를 인용하고 있으나 위 판례는 피의자가 수사관서에 자진출석한 것과 직접 관련없이 범죄혐의의 상당성과 체포의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긴급체포가 위법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4. 긴급체포의 절차
긴급체포를 하기 위해서는 피의자에게 피의사실의 요지, 체포의 이유와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음을 말하고 변명의 기회를 주어서 미리 고지하도록 되어 있으며(법 제200조의5), 학설상으로도 위와 같은 고지는 긴급체포를 위한 실력행사에 들어가기 이전에 미리 하여야 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보고 있다(신동운, 신형사소송법, 법문사, 2012, 260면; 이은모, 형사소송법, 박영사, 2012, 252면; 임동규, 형사소송법, 법문사, 2012, 183면).
이와 같이 체포시 권리고지의 시점과 관련하여 판례는 일관되게 ‘이와 같은 고지는 체포를 위한 실력행사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하여야 하는 것이 원칙이나 달아나는 피의자를 쫓아가 붙들거나 폭력으로 대항하는 피의자를 실력으로 제압하는 경우에는 ① 붙들거나 제압하는 과정에서 하거나, ② 그것이 여의치 않은 경우에는 일단 붙들거나 제압한 후에 지체없이 하여야 한다.’(대법원 2000.7.4.선고 99도4341 판결; 대법원 2007.11.29.선고 2007도7961 판결; 대법원 2008.7.24.선고 2008도2794 판결; 대법원 2010.6.24.선고 2008도11226 판결; 대법원 2012.2.9.선고 2011도7193 판결)고 하여 사전 고지가 어렵거나 사실상 불가능한 경우에는 체포가 완료된 직후에 고지할 수 있도록 수사의 현실을 반영하여 융통성이 있는 적용을 인정하고 있다(한편, 대법원 2006.7.6.선고 2005도6810 판결에 의하면 사법경찰관이 불법체포한 때로부터 6시간 상당이 경과한 이후에 비로소 피고인에 대하여 긴급체포의 절차를 밟았다고 하더라도 이는 동행의 형식 아래 행해진 불법체포에 기하여 사후적으로 취해진 것에 불과하므로 그와 같은 긴급체포 또한 위법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고 하여 임의동행을 형식을 거쳤다고 하여도 사실상의 강제연행 즉 불법체포 후에는 비록 긴급체포의 요건과 절차를 거쳐도 긴급체포가 적법할 수 없다고 하였다).